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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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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노모의 먹먹한 가슴과 네모난 고기상자- 정장영(에스엠에이치 대표이사)

  • 기사입력 : 2020-10-07 20: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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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명절에 노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다녀왔다. 89세 어머님과 94세 아버님이 고향에 살고 계시는 데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아버님이 그만 고관절 골절상을 당해 위험천만한 수술을 감행해야 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성묘도 생략하고 집에서 간단하게 제례만 올리려 했는데 아버님 수술로 이마저 무산돼 코로나 모범생이 되었다. TV 방송에서 노부모를 동원한 고향방문 자제 캠페인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며 재촉했던 고향길이 결국엔 정부 지침대로 조용한 추석이 되어 코로나 확산의 원인 제공은 안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직 총리이자 집권여당의 대표는 수행원을 대동하고 보란 듯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를 다녀왔다고 한다. “깨어 있는 시민들께서 많이 오셨다”고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김해 봉하마을이라니 꽤 먼 거리다. 국경일도 아니고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조상 묘소 참배도 하지 말라고 권장한 기간이니 정치적 목적 이외엔 설명이 안 된다. 외교부 장관 부군은 한 술 더 떠서 요트 사러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입출국이 분명 자유롭지 않은 기간일텐데 대단한 배짱이고 모험이다. 기업인들은 입출국이 막혀서 ‘비디오 콘퍼런스’로 대면회의를 대신해 가며 업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행히 한일간에 기업인 단기출장 시 자가격리 면제 협의가 잘 진행되는 듯해서 천만다행이다. 아무튼 기업인, 일반 국민들 모두 코로나의 피해자이지만 확산 방지를 위해 예측 불가능한 피해까지도 감수하며 정부 지침에 순응하고 있다. 어느 날 개발이 완료된 코로나 치료제와 정부가 국민과 기업을 위해 한껏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경기부양책을 기대하면서 계속 감내할 것이다. 공직자들이 어찌해야 하는지는 말이 필요 없다.

    명절 연휴가 끝나갈 무렵 다행히 아버님 수술이 잘 끝나서 조금은 마음 편히 창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트렁크에는 어머님이 준비해 주신 네모난 선물박스가 실려 있었다. 아파트에 도착해 펼쳐놓은 박스 안에는 예쁜 애호박, 김장용이지만 아직은 어린 무, 파김치용 쪽파, 대파 그리고 태양초로 만든 고운 고춧가루가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고향갈 때 선물로 준비해간 고기 박스를 버리지 않고 진열장으로 쓰신 것이다.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 안 되는 이 선물은 왜 이리 애틋하고 감사한 마음이 물씬 드는 것일까? 아마도 허리 굽은 어머님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흘린 땀과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담긴 때문일 것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코로나 위기로 인해 각종 지원금이 많이도 풀렸다. 나도 한 번은 받아서 지역 상권에 열심히 썼다. 하지만 애틋하고 고마운 정이 그다지 느껴지질 않았다. 평생의 고민과 헌신적인 사랑이 담긴 어머님의 선물에 비해, 정부 지원금은 정치적 효과를 고려하다 보니 선동적이고 중복과 불평등의 요소가 부각되어 그럴 것이다. 고민이 또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다. 국민 세금으로 국민과 기업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 공직자들은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 위기로 기업이 줄도산하고, 젊은 층의 취업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공무원은 오히려 늘고 있고, 처우 또한 최고다. 직장에서 회자되는 말 중에 머리 나쁜 직원이 열심히 하면 회사가 망한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는 5% 이내의 핵심인력이 이끌어가는 조직이다. 하지만 국회를 포함한 정부기관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들이 운집해 있고 이들이 국민에 대한 봉사와 관리 감독을 맡고 있다. 봉사는 육체노동적인 측면이 있지만 관리감독은 철저한 조사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상급기관의 지시에 따라 규제방안만 이행하려 해서도, 그늘진 곳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섣불리 지원금을 풀어헤쳐도 안 된다. 온 국민이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성실히 납부하는 세금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음을 가슴 깊이 느끼고 공직자들은 머리로 발로 뛰며 보답해야 한다. 노부모가 “얘들아 오지 마라”하며 먹먹한 가슴으로까지 지키는 사회적 룰과 오로지 자식의 행복만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담아 꾸리는 어머님의 선물 보따리에 모든 답이 있다.

    정장영(에스엠에이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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