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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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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명절단상- 신순정(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 도민참여센터 사무관)

  • 기사입력 : 2020-09-27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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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피가 추석이다. 어린 시절 이맘때의 고향 집 풍경이 떠오른다.

    #풍경1 이웃집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어른들의 귀찮은 심부름에도 한껏 신이 난 아이들의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볍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술판으로 하루를 보내던 남자 어른들도 명절 손님맞이 집 단장으로 분주하다.

    #풍경2 적막감이 감도는 우리 집이다. 평소에는 마을 한가운데 자리해, 밥 때 맞춰 집 앞을 지나는 행인은 누구라도 밥상의 한 식구가 되는 동네 사랑방. 추석 대목장을 다녀오신 아버지의 보따리에는 차례상에 오를 음식보다 커피와 설탕, 각종 차들로 가득하다.

    외동아들로 자란 아버지는 한두 살 터울의 아들 딸 칠남매를 두었다. 할머니까지 열 명의 대가족에 늘 왁자한 우리 집이 조용해지는 기간이 일 년에 두 번 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이웃들이 발길을 끊는 명절이다. 나는 그런 명절이 싫었다. 365일 눈뜨면 매일 보는 식구들 얼굴만으로는 명절 기분은커녕, 누구에게 위로라도 받고 싶을 만큼 우울했다. 왜 나에게는 삼촌 하나 없는 것일까? 차례로 도회지 상급학교에 진학한 오빠들과 언니가 명절연휴 집에 다니러 오면서 지독한 나의 명절증후군도 사라져갔다. 특별할 것 없는 연휴로 가볍게 다가오던 명절이 또다시 나를 무겁게 누르기 시작했다. 화려한 차례상에 엄마의 고단한 노동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면서다. ‘명절이 기다려지지 않고, 부담스러워지면 비로소 어른’ 이라던 여고시절 담임의 말씀처럼 어느덧 나도 어른이 된 것이다.

    지난 7월 초, 아버지 기일을 기념한 자리에 누군가 옛 기억의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 보따리 속에는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내 유년기의 명절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우리 형제들 모두에게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족은 감정조차 서로 전이하고 공유하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코로나 시대는 추석 고향방문까지 미루라고 권한다. 그래서 더욱 간절해지지만, 한 걸음만 늦추리라. 가을이 조금 더 깊어진 하루, 아버지의 옛 낚시터에 가서 아버지의 그 자리에 앉아보련다.

    신순정(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 도민참여센터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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