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산티아고 순례길 (2)

기나긴 이길이 외롭지 않은 이유、함께니까
순례길에서의 인사말 ‘부엔 카미노’
길 위에서 각국 사람과 인사 나누면

  • 기사입력 : 2020-09-24 20:46:41
  •   
  • ‘부엔 카미노!’ 영어로 말하자면 ‘Good Trip’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다. 특별히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의역하면 ‘좋은 순례길 되세요!’가 될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인종도 국적도 나이도 모두 다른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도처에서 이 말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된다. 아마 순례길을 걸어본 분들이라면 도처에서 들리는 이 말에 자기도 모르게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사귄 새로운 친구와 순례길을 걷고 있었던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방향을 안내하는 가리비 표지판.
    산티아고 순례길의 방향을 안내하는 가리비 표지판.

    ‘부엔 카미노!’ 이 말은 순례길을 걷다 지쳐서 앉아 있을 때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 되고, 함께 걸어 나갈 힘을 주는 마법의 말이며, 순례길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때를 회상하며 힘을 주는 기적의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오는 사람은 혼자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정 끝까지 혼자만 걷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혼자나 둘이나 가족과 함께 오든,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 첫날 출발지인 생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길 끝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의 70% 이상은 첫날 만난 그룹과 한 달 이상을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부엔 카미노!’ 외치며 응원해주는 마을 주민.
    ‘부엔 카미노!’ 외치며 응원해주는 마을 주민.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걸으면서, 각자의 걸음 속도나 상황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를 반복하게 되면서 순례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다시 만날 때는 오래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움에 함께 대화하고 밥을 먹다가 헤어질 땐 언젠가 만날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나는 첫날 피레네에서 만난 언니와 끝까지 함께했고, 9시간 동안 산을 타고나니 친구가 되었고, 전우가 되었다. 그날 만났던 언니가 아니었다면, 산속에서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나보다 2살 많았던 언니는 나와 같은 대학생이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이후 7일 차 때 길을 걸으며 배려심 깊은 친구를 만났고, 10일 차 때 알베르게에서 저녁 준비하며 만난 전우들. 우리는 어느새 모두 8명이 한 가족이 되었고 산티아고까지 함께 했다. 스페인에서의 인연으로 아직도 연례행사처럼 모두 시간이 맞을 때 만나면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재미로 살아간다.

    나헤라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 프론트.
    나헤라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 프론트.

    며칠을 걷다 보니 일찍 일어나 걷는 것에 내 몸은 적응되어 있었다. 뜨거운 햇볕, 스페인의 문화, 여유로운 한적함에. 순례길을 걷는 데 필요한 준비물은 많지 않다. 800km를 두 다리로 걷는 여정이니만큼 최소한의 필수 아이템을 가볍게 소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화장 안 하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기 싫었던 한국과는 다르다. 먹는 것, 간단한 여벌 옷, 매일매일의 숙소를 확보하는 것, 사람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 만큼 불행하다. 나 역시도 그랬고, 알고 있더라도 욕구라는 것을 내려놓기란 무척 어렵다.

    친구들과 같이 추억의 한컷.
    친구들과 같이 추억의 한컷.

    이 길을 걷는 30여 일 만큼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게 된다. 눈뜨면 제일 먼저 먹는 것을 확보하고, 그날의 목적지 마을에 도착해서 숙소를 확보하고(낯선 사람이 내 옆에 자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빨래하며 다음 날을 준비하는 것.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며 남는 시간을 보낸다.

    함께 걸었던 친구들이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
    함께 걸었던 친구들이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

    한 달 동안 욕구를 최소화해서 1단계 생존의 욕구만 충족하며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적당한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산티아고에서의 시간은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득했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ps: 물론 한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야 말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가 보다.

    메인이미지

    △ 조은혜

    △ 1994년 마산 출생

    △ 경남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