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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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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 고성 서비정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3-1-6호)

나는 책속에 묻혀 詩속에 숨어 산다네

  • 기사입력 : 2020-09-21 20:50:49
  •   
  • 본지는 기획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를 이번 주부터 2주에 한 번씩 연재한다. 이번 기획은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후속으로 김관수 사진작가의 사진에 문학운동단체 ‘하로동선’ 동인들의 시를 입혔다.

    현재 경남사진학술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관수 사진작가는 ‘늪’, ‘공즉시색- BALI’, ‘비감비경’,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도록’ 등 다수의 사진집을 발간했고, ‘하로동선’은 도내 중진작가들이 중심이 된 문학단체로 지금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도내 구석구석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소를 마음을 울리는 한 편의 시와 함께 감상해보자.

    ???


    시은(詩隱)


    산속에 들어 숨는 것을 소은(小隱)이라 하고

    시중(市中)에 묻혀 숨는 것을 시은(市隱)이라 하지

    나는 책속에 묻혀 시(詩)속에 숨어 산다네

    할 말도 시(詩)로 하고

    못 할 말도 시(詩)로 하지

    들어가 마땅한 산골을 찾을 길도 없고

    시중(市中)에 묻히자니 얽매이지 않을 길 없어

    나는 책속에 묻혀 시(詩)속에 숨어 산다네

    행간(行間)과 행간 사이

    활자(活字)와 활자 사이

    숲이 우거지고 새소리 명랑하니

    숨을 곳 이만한 데도 드물지

    할 말도 시(詩)로 하고

    못 할 말도 시(詩)로 하며

    나는 책속에 묻혀 시(詩)속에 숨어 산다네.


    ☞서비정(西扉亭)은 최우순(崔宇淳, 1832~1911) 선생의 애국심을 기려 세운 정자다.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970 학동마을 안쪽에 있으며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3-1-6호로 지정돼 있다.

    최우순 선생은 조선 말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지금 천지가 바뀌어 종묘사직은 망하고, 머리와 발이 뒤바뀌어 삼천리 강토에 편안히 있을 곳이 없으니 나는 어디로 돌아갈까, 지금부터는 서쪽에서 기거하며 서쪽에서 침식을 하며 서쪽에서 늙어 서쪽에서 죽을 것이다.” 하며 집 동쪽에 일본이 있다고 해서 사립문을 서쪽으로 돌리고, 아호(雅號)를 청사(晴沙)에서 서비(西扉)로 고쳤다.

    경술국치를 강행한 일본은 전국의 유림들에게 일왕의 은사금을 주어 회유했으며, 그에게도 은사금을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최 선생은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이 헌병을 파견해 연행하려 하자 최 선생은 이에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독약을 먹고 순절하였다. 1911년 3월 19일 향년 80세에 일어난 일이다.

    위 시 ‘시은(詩隱)’에선 최우순 선생과 같이 일제에 대항했던 독립투사들이 일제의 시선을 피해 ‘은둔’했던 상황을 ‘책속에 묻혀 시(詩)속에 숨어 산다’는 표현으로 전하고 있다.

    시·글= 성선경 시인, 사진= 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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