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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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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2020 해바라기- 황영숙(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0-08-20 20: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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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 길 바다 길 막혀 오갈 수 없다 해도/울타리 너머 저 쪽 발돋움으로 뻗치며/가슴에 들창을 내고 마주 서 있었네’ -(졸시 ‘해바라기’ 일부)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매미가 자지러지게 운다. 매미소리 들으며 방죽을 거슬러 올라가면 누가 심었는지 모를 해바라기가 줄지어 서 있다. 해바라기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 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해바라기에 넋이 나간 소녀가 발을 헛딛고 넘어져 무릎뼈를 다쳐 운다. 유년의 모습이다. 지금도 내 무릎엔 그때 생긴 흉터가 움푹 보조개처럼 패어 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올여름, 장복산 등산로 초입에 줄지어 피어 있는 해바라기를 보며 뉴욕에 있는 딸과 페이스 톡을 한다. 하루의 시작을 페이스 톡으로 출발한다.

    “딸, 잘 지내고 있지? 별 일 없지?”

    “응, 엄마. 걷고 있어요. 엄마는?”

    “나도 걷고 있다. 지금 뒷산이야. 마스크 했지?”

    한국과 뉴욕의 하늘과 바람, 풀, 꽃 등을 보여주며 안부를 전하는 모녀의 동시간대 걷기는 몇 개월째 계속된다. 코로나가 처음 창궐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괜찮나’, ‘조심해라’를 서로가 반복하며 확인 또 확인한다. 타국에 홀로 갇힌 딸아이가 이 시국에 과연 누구와 마음 놓고 시시콜콜 온갖 이야기 다 할 수 있을까. 받아 주고 위로해 주고 서로를 점검한다. 다행한 일에 감사하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하늘 길 바다 길 열려 마음 놓고 오갈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랜 시간 코로나와 싸우며 장마와 폭우로 실종 또는 사망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하다 보니 자연 앞에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와 한 몸이 되었을 먼저 간 그들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두려움을 어떻게 견디다 가셨을까.

    가재도구를 씻고 말리고 죽어가는 농작물을 정리하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일어설 준비들을 한다. 장마와 폭우로 인한 피해가 채 가시기도 전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그렇다고 우리는 손 놓고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슬픔을 수습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소박한 식탁을 마련해야 한다. 서로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주며 희망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걸어가야 한다.

    열사병 환자가 발생할 정도로 뜨거워진 지구. 그렇게도 보고 싶던 태양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분명 지구촌은 심각한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만든 덫에 우리가 스스로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태양의 꽃을 피워 낸 빈센트 반 고흐는 함께할 친구 고갱을 기다리며 해바라기를 그려서 방을 꾸몄다고 한다. 생명, 숭배, 행운, 애모, 기다림 등을 가진 해바라기 꽃말을 새기며 우리 모두 2020년을 잘 넘겼으면 좋겠다.

    “엄마, 난 오늘도 걷고 있어요.”

    “응, 나도 걷고 있다. 지금 해바라기 언덕에서 꽃 보고 있다.”

    “신기하네요. 여기도 해바라기가 피어 있어요.”

    딸이 해바라기 사진을 캡처해 보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름이 가려 한다. 매미 소리가 자지러진다. 잔뜩 물을 머금었던 하늘이 한껏 가벼워진다. 뒷산 해바라기는 이제 씨앗을 품기 시작한다. 못다 전한 안부가 켜켜이 익어간다.

    황영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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