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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사재기- 이종훈(정치팀장)

  • 기사입력 : 2020-08-13 2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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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란과 역병을 많이 겪은 조선시대에도 매점매석(사재기)이 성행했다. 백성들에게는 먹고살기 위한 대비책이었지만 이윤 극대화를 위해 물건을 사들이는 악덕상인도 많았다. 당시 유명했던 인물이 허생이다. 박지원 소설 ‘허생전’ 의 주인공인 허생은 부자에게 돈 만 냥을 빌린 뒤 시장의 과일을 싹쓸이해 10배 이상 비싼 값에 팔았다. 허생은 이런 식으로 ‘말총’도 사들인 뒤 비싼 값에 되팔아 큰돈을 벌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허생은 이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등 인류애를 실천했다.

    ▼사재기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자 생필품 사재기가 속출했다. 우리나라도 한때 일부 사재기 현상이 있었지만 마스크를 제외하고는 몸살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독 휴지 사재기가 속출했다는 것이다. 먹는 것도 아닌데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가짜뉴스 영향과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증상이 나타나면서 위기의식을 자극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이 개발되기도 전부터 싹쓸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그것도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앞으로 2년 걸려 10억개를 간신히 생산할 전망인데 선진국이 입도선매한 분량이 이보다 많은 13억개라고 한다. 이를 두고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사재기’로 표현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규장각에는 조선시대 한양에서 살던 젊은 사대부 유만주가 쓴 일기책이 24권 보관돼 있다. 유만주는 일기에서 극심한 빈부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등 당시 사회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모든 물건값이 앙등한 까닭은 도고(상품의 매점매석을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던 상행위)의 극악한 폐단 때문’이란 분석도 한다. 100년 만에 맞은 보건 위기에서 백신을 ‘도고’로 활용하는 선진국을 보면서 이들 국가에서 인류애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인지 한숨만 나온다.

    이종훈(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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