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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2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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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전세(傳貰)- 이상권(정치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08-12 20: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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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城) 중에 있는 몇몇 집들은 다 내가 머물러 살았던 집인데 때로는 몰아 내쫓음을 당하여 동서로 자주 떠돌아다녔네.” 조선 전기 영남 유학의 종조(宗祖)로 추앙받는 밀양 출신 점필재 김종직은 한양 셋방살이 설움을 시에 담았다. 계급사회였던 조선 시대조차 고위 관료라 해도 상경해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남의 집을 전전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퇴계 이황도 전세살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 개항 이후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렸다. 서울의 주택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세 확대로 이어졌다. 집주인은 주택을 빌려주고 이자 없는 목돈을 마련해 집 살 때 모자란 돈을 충당했다. 세입자로서는 월세를 내지 않고 주택을 이용할 수 있는 데다 훗날 집을 살 수 있는 ‘종잣돈’을 마련하는 방편이었다. 우리나라 오랜 전세구조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특수한 경제 구조가 만들어낸 타협의 산물인 셈이다.

    ▼남의 집살이는 고달픈 인생역정이다. 80년대만 해도 공급 부족은 전셋값 상승을 부추겼고 서민 고통은 가중됐다. 세입자와 집주인 간 숱한 다툼이 일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서울에서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평균 12년 이상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에서 자기 집에서 사는 비율은 2017년 기준 42.8%다. ‘살인적’ 집값에 자가는 10명 중 4명에 불과한 현실이다.

    ▼정부가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며 부동산 관련법을 통과시켰지만 시중에선 오히려 ‘규제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 전세 매물 자체가 없는 ‘제로(0) 단지’가 속출하면서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중략)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없고/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잠이 오지 않는다” 가난한 시인의 한숨처럼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겐 지상에서 몸 편히 누울 방 한 칸은 망망대해처럼 아득하다. 한평생 남의 집을 전전하다 자식에게 납골당 관리비만 안기고 가야 할지도 모를 서글픈 현실이다.

    이상권(정치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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