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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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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그녀의 다짐- 강지현(편집팀장)

  • 기사입력 : 2020-07-23 20: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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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심해라!” 살면서 그녀가 질리도록 들은 말은 “조심해라”였다. 차조심, 불조심, 특히 남자사람조심. 어린 시절엔 이상한 동네 아저씨를, 학창 시절엔 이상한 남자 선생님을, 취직했을 땐 이상한 상사를 조심해야 했다. 이상한 짓 하는 건 그들인데, 조심해야 하는 건 늘 그녀였다. 그들은 당당했고, 그녀는 불안했다. 그래서였을까. 직장 성희롱 피해도 숨기기 급급했다. 조심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았다. 부끄러웠다.

    ▼그녀는 2년 전의 뜨거웠던 미투(#MeToo) 운동을 기억한다. 정부 차원에서 성폭력 매뉴얼이 만들어졌고, 신고센터도 생겼다. 다른 세상이 오는 듯했다. 오산이었다. 신고는 늘었다지만 그녀가 보기엔 피해자는 여전히 2차 가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해자는) 그럴 분이 아니다. (피해자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말로 상처주는 건 예사. 처신 운운하며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거나 ‘피해자다움’을 요구한다. 심지어 여직원과는 일대일 대면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펜스룰(Pence Rule)’을 친다.

    ▼최근 그녀는 코로나 이후 처음 영화관에 갔다. ‘응원 관람’을 위해서다.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된 미국 폭스뉴스 성범죄 고발 실화 ‘밤쉘’을 봤다. “남 얘기 같지 않다”고 한 관객들의 후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참지 않을 권리가 있다’를 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유새빛 작가의 말도 생각났다. “제도의 공백을 메우는 것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당연한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를 유별나다고 평가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연대와 응원에서 희망을 찾아보지만, 대한민국 직장 여성으로 살아가는 건 여전히 고달프다. 그녀는 한 피해 여성의 절규를 기억한다. ‘숨 쉬고 싶었다.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엄마가 된 그녀는 소원한다. 내 딸은 공정한 법이 보호해 주는 세상에서 살기를. 그리고 이 말도 잊지 않고 해주리라 다짐한다. “부끄러워 마라. 기죽지 마라. 네 잘못이 아니다. 엄마는 무조건 네 편이다.”

    강지현(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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