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5일 (목)
전체메뉴

[가고파] 서울 공화국- 이상권(정치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07-15 20:23:24
  •   
  • 전남 강진에서 유배하던 다산 정약용은 부인이 보낸 다섯 폭 치마로 하피첩을 만들었다. 자식에게 쇠락한 집안을 보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처세를 당부한 서첩이다. 요즘 말로 소위 ‘인(in) 서울’에 대한 강한 집착도 담았다. “장차는 도성에서 십 리 안쪽에 살아야 한다. 가세가 기울어 도성 안에 들어갈 형편이 못 되면, 근교에 터를 잡아 과일나무도 심고 채소도 가꾸며 생계를 돌보아라. 그리하여 재산이 모이면 도심 한복판으로 옮겨라”고 했다. 폐족(廢族)에서 벗어나려는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다산과는 반대로 벼슬을 마다하고 ‘탈(脫)서울’을 원했던 경우도 있다. 퇴계 이황은 아호가 말하듯 ‘물러나 시냇가에 머물기(退溪)’를 바랐다. 1534년(중종 29년) 34세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시작한 이후 1569년(선조 2년) 69세에 낙향할 때까지 모두 여섯 차례나 입각과 퇴직을 반복했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조정에서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 등의 관직을 제수했으나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다.

    ▼멸문지화(滅門之禍)의 다산과 요직을 두루 거친 퇴계의 대비된 삶의 대처이지만 서울살이에 대한 애증은 시대를 초월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가 서울에 집중된 탓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 나온 건 그만한 연유가 있다. 조선 시대 한양에는 백성의 1% 정도인 10만~20만 명이 살았다. 지금은 국민 20%가 서울 시민이다. 수도권에는 50%가 산다.

    ▼부동산 문제로 나라가 들썩인다. 서울엔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집이 즐비하다. 빈곤층엔 더없이 고된 곳이지만 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 다산이 요즘 세태를 봤더라면 자신의 혜안에 감탄하며 무릎을 쳤을 법하다. ‘도심 한복판’의 삶은 부(富)와 이에 수반한 삶의 질까지 바꿔놓았다. 부의 축적 정도는 현대판 계급 척도다. 오죽하면 다주택 공직자조차 서울집은 팔지 않는다. 지역구가 아닌 서울에만 집을 가진 국회의원도 있다. ‘서울 공화국’ 모양새가 이렇다.

    이상권(정치팀 서울본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상권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