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0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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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라이프] 논란의 ‘디지털 교도소’

널 공개한다,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온라인 자경단’ 디지털 교도소
성범죄자 등 신상 30년간 공개… 현 91명

  • 기사입력 : 2020-07-14 21: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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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로우리라 믿었던 법이 가해자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피해자의 상처는 이왕 지나간 일 취급을 할 때”

    “단지 처벌이 솜방망이로 그친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간에 주고받은 피해에 대해 ‘형평성’을 맞춘 것 뿐”

    이런 말을 한 경찰대학생 김지용은 주말이면 검은색 후드집업를 입은 자경단(비질란테·Vigilante)이 된다. 죄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을 받고, 죄를 뉘우치지 않고 같은 범행을 일삼는 범죄자를 찾아가 주먹으로 응징한다.

    2018년 4월부터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비질란테’의 줄거리다.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사법 불신에 따른 사적 제재’라는 비질란테의 핵심 테마는 허구에 그치지 않았다. 디지털 공간에서 다른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현실판 비질란테’의 사적 제재 수단은 ‘주먹’이 아니다. ‘신상공개’다.


    ◇디지털 교도소, 온라인에 30년간 개인신상 ‘박제’= 최근 ‘디지털 교도소’라는 이름의 온라인 웹사이트가 논란이다. ‘대한민국 악성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라고 소개한 디지털 교도소에는 지난 13일 오후 5시 기준 성범죄자 등 91명의 신상정보가 공개돼 있다. 텔레그램 n번방 갓갓 문형욱 등 최근 디지털 성범죄로 경찰이 신상을 공개한 이들은 물론 신상공개가 결정되지 않은 n번방·박사방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신상정보도 포함돼 있다. 게재된 신상정보는 얼굴, 이름, 나이, 주소, 전화번호, 직장, 출신학교, 직장 등이다.

    신상정보가 담긴 홈페이지의 ‘범죄자 목록’은 성범죄자·아동학대·살인자 등 3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이 항목들로 분류되지 않는 이들의 신상정보도 공개돼 있다. 재판을 받고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도 있는 반면, 범죄 의혹만 있거나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사람들이다. 또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범죄인 인도를 불허한 판사다. 이 판사는 국민 법 감정에 위배된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에서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신상공개 기간은 30년이다. 사실상 디지털 공간에 한 개인을 ‘박제’하는 셈이다. 신상공개 대상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는 웹사이트 개설 이유를 “대한민국의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합니다”라고 밝혔다.

    ◇불법이지만 커지는 지지의 목소리= 임의로 개인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다. ‘배드 파더스’ 사례처럼 공익성을 인정받으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지만 흔한 사례는 아니다. 배드 파더스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로, 비방과 비난의 목적이 아닌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려 했다는 목적을 인정받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미 성범죄알림e를 통해 공개된 정보도 이를 유포하거나 공개하면 관련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 경찰은 이런 혐의들로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를 수사 중이다.

    그렇지만 디지털 교도소를 옹호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라는 사법 불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디지털 교도소가 나타났다는 목소리를 낸다.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오죽했으면 범죄자를 공개하겠냐. 디지털 교도소 운영해주신 분들 감사하다”, “정당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디지털 교도소가 나온 배경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등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신상 이용 피의자, 신상공개로 처벌’= 일부 시민들이 ‘신상공개’ 방식의 단죄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간 쌓여온 사법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검·경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에 따른 형벌 집행이 국민의 법 감정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지난 5월 말 발행한 ‘KIC(형사정책연구원) 이슈페이퍼 특별호’를 보면, 2018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자의 처분은 집행유예 비율이 51.9%로 절반이 넘고 징역형은 37.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평균 징역형량은 2년가량이었고 가장 긴 경우도 5년이었다.

    특히 이번 ‘디지털 교도소 방식의 신상공개’’를 향한 시민들의 지지는 n번방 사건 등 최근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대근 연구위원은 경남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에는 n번방 등 최근 디지털 범죄가 신상정보를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한 것이다 보니까 가해자에게도 동일한 형태의 피해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형태의 보복이다”며 “여성의 경우 성범죄에 대한 잠재적 두려움이 크다. 제작, 구매 등 광범위한 n번방 가해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의 신상을 확인하고 싶은 심리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는 홈페이지에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 즉 신상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합니다”라고 밝혔다. 지난 3월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n번방 사건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찬성 응답은 82%(매우 찬성 58.0%, 찬성하는 편 24.0%)로 나타났다.

    ◇신상공개 신중해야 하는 이유= 시민들은 신상공개를 성범죄자 등 흉악범을 ‘처벌하는 정당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신상공개제도 자체의 실효성은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영역이다. 신상공개제도가 피의자의 재범 방지(특별예방), 일반인 범죄 예방(일반예방) 등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입증한 연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함께 쓴 ‘성폭력범죄자 사후관리시스템에 대한 평가연구-신상공개제도의 효과성 연구’를 보면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신상공개가 처음 실시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성폭력범죄 추이를 보면 전체 성폭력범죄, 청소년 대상 성폭력범죄, 아동대상 성폭력범죄 모두 증가 추세를 보여 연구진은 ‘잠재적 범죄자의 범죄를 억제하는 일반예방 효과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연구진은 같은 연구에서 동종 재범자의 비율은 2000년에는 12.6%에서 2011년에는 18.5%로 증가해 신상공개제도가 특별예방 효과가 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확정 판결 이전 수사 중인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특정강력범죄법(2010년 제정) 등에 따른 신상공개는 무죄추정원칙 등에 반할 수 있는데다 차후 잘못된 신상공개로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어 특정범죄에 제한적으로 운용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김 위원은 “시민들의 심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신상공개의 무분별한 확대는 ‘망신주기’라는 감정 해소 이외 다른 효과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죄질에 부합하는 형벌체계를 구축하고 ‘범행을 저지르면 반드시 체포해 처벌한다’는 인식을 갖추게 하는 것이 범죄예방에 더 효과적이다”고 강조했다.

    안대훈 기자 ad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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