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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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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어떤 귀로(歸路)- 정삼조(시인)

  • 기사입력 : 2020-07-08 20: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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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삼조 시인

    박재삼 시인의 시 「어떤 귀로」는 가난한 가정의 실상을 묘사한 시다. 고된 하루의 행상(行商)을 마치고 빈손으로 귀가한 어머니의 눈에 비친 가난한 집안 모습을 그렸다. 전체를 인용해 본다.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 방 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 알아주는 이 없는 것,/ 이마 위에 이고 온/ 별빛을 풀어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 달빛을 털어놓는다.”

    ‘빚으로도 못 갚는 어린것들’이라는 부분은 ‘자식은 전생의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이기에 달라면 주지 않을 수 없다’는 불경 구절을 연상시킨다. 이 시의 압권은 마지막 연이다. 그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먹을 것 대신에 별빛과 달빛을 털어놓는다. 이것은 어머니의 ‘정성’이다. 가장 순수하고 맑은 ‘사랑’이다. 이 정성과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장차 사회에 해악을 끼칠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일견 타당한 듯하지만, 사실은 가난을 방치하자는 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이 개인의 무능과 방만한 생활 태도에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난한 집에 태어나 평생을 그대로 가난할 이른바 ‘흙수저’의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아마도 오늘의 ‘나라님’은 이 불공정 불평등 문제 해결에 제 일 순위의 책무를 다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박재삼 시인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평생을 노력하여 가난했지만 건강한 시민으로 한 삶을 마감하였다. 1933년에 나서 1997년에 병마로 작고할 때까지 열다섯 권의 시집을 남겼다. 위의 시도 당신 어머니의 행상 뒤 귀가를 상상하여 그린 시이다. 가난했던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묘사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오히려 맑은 영혼을 노래함과 함께 가난 문제의 사회적 확산에 이바지한 시다.

    정삼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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