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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타인능해(他人能解)- 김희진(정치팀 기자)

  • 기사입력 : 2020-07-07 20: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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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일 중 하나가 바로 착한 임대료(인) 운동이다. 경기 침체와 소비 부진으로 힘든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임대료를 인하해준 착한 임대인이 경남에만 2600명(6월 20일 기준) 넘게 나왔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들고 낮은 곳을 돌아보고 함께 위기를 이겨내고자 스스로 나선 시민들의 선한 영향력과 공동체의식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힘과 용기를 얻었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타인능해(他人能解)’란 말이 있다.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인데,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고택 운조루(雲鳥樓)의 쌀 뒤주 마개에 쓰여진 글이다. 곡식창고엔 자물쇠를 채우고 뒤주는 안채 깊숙한 곳에 숨겨두기 마련인데 운조루의 뒤주는 외부 사람도 잘 찾을 수 있도록 사랑채 부엌에 놓여 있다. 굶주린 이웃이 주인과 마주치지 않고 필요한 만큼 쌀을 퍼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뒤주는 비는 날 없이 늘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99칸 대저택인 운조루의 굴뚝은 여느 양반집과 달리 지붕 위에 높이 서있지 않고 섬돌 아래 낮게 세웠다. 부잣집에서 나는 밥 짓는 연기가 높은 굴뚝을 타고 퍼지면 끼니를 거르는 이웃들이 더욱 힘들 거라는 걱정 때문이다. 가난하고 힘 없는 이웃을 배려하기 위해 굴뚝이 낮아 아궁이에 불을 땔 때마다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타인능해 정신의 운조루는 동학혁명, 여순사건, 6·25전쟁 등을 거치는 동안 다른 부잣집처럼 해를 입지 않았다.

    ▼6·17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온나라가 시끄럽다. 한 쪽에선 내 집 한 칸 마련하는 게 일생일대의 꿈인데, 또다른 한 쪽에선 그 꿈을 밟고 서서 돈 놓고 돈 먹기를 한다. 두둑한 주머니를 더 불리려 지방 주택시장으로 몰려오는 큰손들에게 운조루의 타인능해 정신을 기대하긴 어려운 걸까? 톨스토이는 말했다. 부는 분뇨와 같아서 쌓여있으면 악취를 풍기고 뿌려지면 흙을 기름지게 한다고.

    김희진(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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