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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모든 것은 지나가기 위하여 왔다- 홍옥숙(사천문인협회 회장)

  • 기사입력 : 2020-06-22 20: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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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옥숙 사천문인협회 회장

    모든 것은 지나가기 위하여 왔다. 왜인지 가슴을 싸하게 하는 이 구절은 성경에 456번이나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말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기에 아쉬워하는 이가 많다. 영어성경에는 “it came to pass”로 번역되어 그 뜻이 명확한데 비해서 한국말성경은 “그 일 후에” “이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뒤에” 등 애매하게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엔돌핀 박사로 알려진 이상구 박사가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무릎을 쳤다는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익히 쓰고 있는 말들 중에 뜻이 같은 것들이 많을 뿐 아니라 “영원한 것은 없다”와는 조금의 차이도 없지만 유독 이 말이 마음을 흔드는 것은 “왔다”라고 하는 작은 표현의 차이일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참새도 지나가고 거북이도 지나가고 나무도 지나가고 풀도 지나간다. 그리고 나도 지나간다. 복잡할라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단순하자면 내가 이 세상을 지나가기 위해 와 있다는 사실에 순간 코끝이 찡하다.

    구태여 풀어보자면 나도 자연이라는 사실을 깊이 긍정하게 되는 울림이라고나 해야 할지. 소풍 왔다는 천상병 시인의 말을 그대로 긍정하기에는 너무 눈물 많은 곳이기는 해도, 해지기 전에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 소풍지인 것은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래, 산다고 너무 애끓일 일이 아니다.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왔노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도 그럴 일이 아니다.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났겠는가. 우리는 모두 지나간다. 공기와 햇빛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듯, 푸른 별 지구를 지나며 36.5도로 타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는 그러므로 누구나 평등하다. 반드시 잊힐 것을 어떻게든 삶의 흔적을 남기려는 몸부림이 애처로운 이유다. 진정으로 깨친 이는 아무 흔적 없이 살다 흔적 없이 간다는 말이 어찌 이리도 사무칠까보냐.

    우리 모두는 지나가기 위해, 아니 건너가기 위해 와 있다. 오늘부터 나는 그렇게 믿을 것이다. 여기를 건너면 그 어떤 모순도 불합리도 없는 완성된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홍옥숙(사천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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