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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저단가에 덮인 시름- 최준홍(경남벤처기업협회 사무처장)

  • 기사입력 : 2020-06-21 20: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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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준홍 경남벤처기업협회 사무처장

    ‘물건을 모르면 돈을 많아 주라’는 말이 있다. 가격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이 투명해져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훤히 볼 수 있다. 저단가의 이면에는 또 다른 시련들이 있다. 김해의 한 공장에서는 냉장고에 들어가는 콤프레샤 부품인 피스톤을 월 수만개 생산하여 개당 2달러에 중국에 수출하고 있었는데 올해부터 또 10%를 낮추라 해서 견디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자동차 베어링을 생산하는 창녕의 한 공장은 3년 전 250억원을 들여 자동화 생산라인을 구축했으나 현재는 경영난에 처해 있다. 스크류 볼트를 생산하는 창원 봉암공단의 모 회사는 자동화시설 구축으로 30명이었던 종업원을 5명 이내로 줄였지만 100원대였던 볼트의 단가는 현재 10원대로 떨어졌고 사장도 생산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하나같이 경영목표를 원가절감, 품질혁신, 고객만족을 내걸고 열심히 일해 왔지만 형편은 더 어려워졌고 존립마저 위태로운 처지다. 이처럼 자동화는 단위 생산량은 증대시켰지만 저단가의 역습으로 불편한 진실이 되고 있다. 실상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덮여 있어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각종 공사현장과 안전, 의료, 여행, 운송, 검사, 사업수주 등 전 분야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저단가가 심화되어 전문가들의 일자리는 잠식당하고 저임금으로 인한 자긍심과 사기마저 떨어지고 있다.

    많은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주요 공정에서 요행과 부실로 이어져 인재 참사가 그치지 않고 있다. 경제원론 수업시간에 “저단가를 좋아하는 부인은 결국 자기 남편의 밥그릇을 잃게 만들 것”이라는 교수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단가는 저임금을 부르고 저수요와 저투자로 이어져 결국 공장이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을 반증하는 이런 우려들을 다소나마 덜고 우리가 바라는 잘사는 나라, 반듯한 나라로 나아갈 방법은 없을까?

    먼저 기업들도 경영 목표를 시대에 맞게 바꾸었으면 한다. 원가 절감은 현실적으로 더 이상 개입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더 좋은 소재와 원료를 원가에 반영하고 수용하여 제품의 질을 높여 고객의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객의 만족은 적정 가격에 구매한 고객의 몫이 되도록 해야 한다. 위탁 생산의 경우 노하우를 가미한 관련 제품의 융·복합화도 필요하다.

    저단가만을 요구하는 고객의 눈높이를 다 맞추다 보면 기업은 부도 난다. 공장의 스마트화는 바람직하다. 다만 수주의 지속성과 미래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생산 현장의 안전과 청정성 면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맛집의 중요메뉴 레시피는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는 것처럼 핵심기술은 보호되어야 하고 제품의 특징과 명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인력을 대신하는 자동화 구축은 자칫 더 고도화된 기계와 저단가를 부르는 악순환이 된다. 올해 경상남도에서 수행하는 공장 스마트화 역량 강화 사업도 이런 관점에서 모니터링이 필요한 좋은 기회다.

    또한 이천 참사로 사업주와 법인의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이 준비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업의 도급도 원청과 하청의 1단계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소기업 납품단가 조정위원회가 5월에 출범하여 제조원가 상승분이 단가에 적절히 반영되는지도 감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종 소비자인 우리가 저가만을 선호하는 인식에서 적정가격 지불로 품격도 높이고 효용의 가치를 누리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사회적인 인식과 컨센서스가 형성된다면 안전이 도모되고 기업들도 기술 혁신으로 보답할 것이다.

    최준홍(경남벤처기업협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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