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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침묵은 ‘사회적 타살’이다- 정기식(창원시정연구원 경영지원실장)

  • 기사입력 : 2020-06-14 2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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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10일 새벽,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건 후 15분가량의 음성유서도 발견되었다. “저는요, 힘도 없고요. 맞아본 거 생전 처음입니다. (올해 나이)60인데요. 진짜, 71년생이 막냇동생 같은 사람이 협박하고 때리고 감금시켜 놓고…” 그는 가해자의 실명을 8번이나 언급하며 억울함을 풀어주고,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xxx 씨라는 사람한테 맞은 증거예요. TV에도 다 나오게, 방송 불러서 공개해주세요.” 음성유서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가족들과 자신을 도와주었던 주민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대목도 있었다. “00엄마, 도와줘서 고마워요, 000호 사모님, 정말 그 은혜 꼭 갚겠습니다.” 참담하고도 너무 서글픈 사건이었다.

    나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데 경비아저씨들과의 공감이 필요했다. 하여 경비노동자의 노동일지를 모은 책 ‘임계장 이야기’를 읽었다.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었다. 다른 말로 ‘고·다·자’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고르기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인 말이었다. 저자는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38년간 일하다 60세의 나이에 퇴직한 가장이었다. 불안한 노후와 아직 학업을 마치지 못한 대학 3학년 아들의 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교육비 등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였다. 머지않아 필자의 모습이라 공감이 갔다. 저자는 버스회사 배차계장,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장시간의 노동, 비인간적 대우, 비위생적 근무환경 등을 경험하였다. 급기야 버스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쓰러져 해고되었다. 이후 저자는 7개월의 투병생활 끝에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경비노동자의 죽음 이후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파트 경비원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하였는지 살피고 헤아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 사건을 흔한 ‘갑질’ 중의 하나라고, 그냥 노인 경비원 하나 죽은 일이라고 넘어가면 안 되고, 분명한 ‘사회적 타살’이므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경비원 유가족을 방문한 경찰은 눈물을 흘리며 “꼭 제대로 수사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창원시는 현재 노인인구 13.8%로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으며, 9월에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 인증획득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우리는 점차 늘어나는 노인노동의 인권 사각지대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창원시정연구원에는 40%의 비율이 넘는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일한다. 연구보조원의 경우 연령층이 이삼십대가 주류다. 그런데 지난 4월 초에는 60대 초반의 여성을 채용했다. 서류전형과 5명의 면접위원을 통해 공정한 절차를 거친 결과였다. 기간제노동자의 경우 정년이 없기 때문에 연세 드신 분이 채용되었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부 구성원은 채용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의혹을 제기해 담당 부서장으로서 난감한 입장이었다. 외부에도 내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고 하니 마음의 상처는 아직 진행형이다.

    필자는 오랜 세월을 국립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 왔다. 일 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조교생활을 비롯하여, 시간강사 생활을 수년간 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비정규직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지면을 통해 선임연구원을 비롯한 연구위원, 책임연구원에게 부탁드린다. 연구보조원을 대할 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었으면 한다. 정규 근무시간 외의 노동을 은근히 요구해서도 안 된다. 대화 속에서 연구보조원에게 ‘모멸감’, ‘치욕’을 느끼게 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2019년 7월 16일부터 일명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었다. 피해자의 결근, 근무태도 불성실, 괴롭힘 조사비용 등을 바탕으로 ‘직장 내 괴롭힘’ 한 건 처리하는데 1,550만원의 손해비용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정기식(창원시정연구원 경영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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