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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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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경으로 쓴 삶의 노래

유홍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산청 출신 시인 9년 만에 네 번째 시집

  • 기사입력 : 2020-06-02 08: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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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청에서 태어나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한 유홍준 시인. 세 번째 시집을 낸 후 9년 만에 네 번째 시집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으로 돌아왔다.

    “해체시와 민중시 사이에 새로운 길 하나를 내고 있다”는 호평으로 주목받았던 첫 시집부터 ‘직접’의 시인을 자처하며 삶 자체로서의 시학을 선보였던 세 번째 시집까지, 시인이 그려낸 삶의 불모성과 비극성은 우리의 감각에 강렬한 통증을 심어주었다. 네 번째 시집 또한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 조금 더 넓은 보폭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백정의 마을 섭천에 와 많은 것이 줄고 더 또렷해진 건 눈빛이라고 밝힌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든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은 본질이 아닌 것을 하나하나 소거해 마침내 ‘그 사람이 맞추어놓은 유골’이, ‘무덤 위에 올라가 사람의 마을을 내려다보는 무덤’이 매서운 눈빛이 됐고, 시집은 그 유골이, 무덤이, 눈빛이 감각한 세계에 다름 아니다. 이 근원적이고 엄중한 직관의 방식으로 시인의 시 세계는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직접’ 경험이 착목(着目)하고 있는 지점은 ‘죽음’이다. 고단한 삶-노동과 불행한 가족사의 세계를 지나 그의 시선은 죽음에 이르렀다. ‘상가(喪家)에 모인 구두들’이라는 첫 시집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죽음은 초기부터 그의 시 세계의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시집의 입구에 배치된 ‘지평선’과의 대결 역시 ‘어디까지 죽을래?’란 진술처럼 죽음을 전제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시집은 ‘죽음’을 배경으로 한 삶의 노래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해설을 맡은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갈등과 불화의 장면들은 이번 시집에서 확연히 줄었다. 대신 그 자리를 일상에 대한 성찰,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대상을 응시하는 시선의 여유가 채우고 있다”고 적시한다.

    그의 신작 시집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은 그의 시 전편을 통해 ‘시적 대상 앞에서 그 낯선 세계의 입구를 찾고 있는 시인의 형형한 눈빛’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민 기자 jm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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