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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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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810) 제25화 부흥시대 120

“인심을 잃으면 안 돼”

  • 기사입력 : 2020-04-09 0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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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하늘이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이젠하워 같은 인물은 하늘이 도와야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전쟁도 끝낼 수 있겠네요?”

    “그래서 대통령이 되자마자 시찰을 온 거야.”

    아이젠하워의 한국 방문은 많은 화제를 남겼다. 이재영도 길에서 군중들과 악수를 하는 아이젠하워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영주는 다음날 부산으로 내려가고 전방시찰까지 마친 아이젠하워도 미국으로 돌아갔다.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12월이 지나고 새 해가 되었다.

    1953년이었다. 아이젠하워가 한국에 왔다가 갔는데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휴전회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고지전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쌀값은 계속 올랐다.

    이재영은 쌀값을 주시했다.

    2월이 되자 쌀값 때문에 폭동이 일어날 조짐까지 보였다

    “쌀을 모두 팔게.”

    이재영은 대구에 내려가서 류관영에게 지시했다.

    “한 달만 더 있으면 더 오를 텐데요?”

    류관영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쌀값이 한없이 오르면 누가 사 먹겠나? 대구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으면 안 돼. 자금도 회수해야 하고….”

    쌀을 산 자금을 더 이상 묶어 둘 수 없었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이재영은 전쟁이 끝나고 부흥이 시작되면 막대한 시멘트가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네는 시멘트공장 건설을 추진해봐. 단양에 석회석이 나오는 산도 있잖아?”

    “일겠습니다.”

    이재영은 7천석에 이르는 쌀을 대부분 팔아 자금을 회수했다. 이익도 많이 남았다. 게다가 화폐개혁이 실시되었으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화폐개혁으로 시장이 요동쳤다. 온 나라 사람들이 화폐를 교환하느라고 아우성이 벌어졌다.

    쌀 백석은 고아원에 나누어 보냈다. 군산의 미곡상 조부삼에게 50석을 기부하겠다고 했으나 백석을 한 것이다.

    3월이 되자 충주의 제사공장이 가동되었다. 이재영은 충주에 자주 내려갔다.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공장에서 생산된 생사 판매를 위한 영업에도 들어갔다.

    “회장님, 꽃놀이 가요.”

    4월이 되자 보리가 이재영에게 말했다. 보리는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다니고 있었다. 이재영은 며칠에 한 번씩 보리의 집에 들르고는 했다.

    “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

    “토요일에 가면 괜찮아요. 반공일이지만 집에 일이 있으면 쉬어도 된대요.”

    보리가 이재영에게 입술을 포개면서 말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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