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진단] 남해안 멸치어선 불법개조 (중) 엔진출력 높여 싹쓸이 어획

800마력 엔진, 조속기 등 조절 350마력 이하로 ‘눈속임’

  • 기사입력 : 2020-04-01 21:06:30
  •   
  • 기선권현망 어업은 본선(끌배) 크기와 엔진 출력이 제한된 어업이다. 현행 규정(어업의 허가신고 규칙)에 따르면 기선권현망 선단의 본선은 40t을 넘길 수 없고 엔진도 회전수 1200 미만일 때는 220마력, 1200 이상이면 350마력 이하의 엔진을 사용해야 한다.

    엔진 출력이 제한된 어선은 외끌이중형저인망(550마력 이하)과 기선권현망 둘뿐이다. 둘 다 그물을 끌어 조업하는 방식이어서 어획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어업이다. 엔진 마력 제한은 강도 높은 어업으로부터 남획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하지만 일부 남해안 멸치어선은 엔진 불법개조를 통해 남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기선권현망 선단이 멸치 조업을 하는 모습. 그물을 끌어올리는 본선 2척 바로 옆에 가공운반선이 대기하고 있다./경남신문DB/
    기선권현망 선단이 멸치 조업을 하는 모습. 그물을 끌어올리는 본선 2척 바로 옆에 가공운반선이 대기하고 있다./경남신문DB/

    ◇마력 제한 있으나 마나= 조업 현장에서 이 같은 마력 제한 규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출력이 규정을 넘긴 엔진이라 하더라도 엔진 출력을 낮춘 뒤 조속기를 봉인(납으로 땜질)하면 350마력 이하 엔진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엔 주로 일본 M사와 Y사의 750, 800마력 엔진이 사용된다. 현행 규정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는 엔진이지만 상당수의 기선권현망 본선에 버젓이 장착돼 있다.

    750마력인 일본 M사의 엔진을 350마력으로 조절한 뒤 조속기를 봉인한 상태. 노란원 안이 봉인된 조속기다.
    750마력인 일본 M사의 엔진을 350마력으로 조절한 뒤 조속기를 봉인한 상태. 노란원 안이 봉인된 조속기다.

    어민들은 선박검사를 전담하고 있는 해양교통안전공단이 눈감아 줬기에 이 같은 편법엔진이 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석연찮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어로장은 “공장에서 출고할 때 엔진 마력이 750인데 조작해 마력을 낮췄다고 검사를 통과시켜주는 것이 말이 되냐”며 “현장에서 최대 출력으로 조업할 것이 뻔한데도 봉인을 이유로 검사해 주는 것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장착 후엔 단속·관리 사각지대= 이렇게 고출력 엔진을 장착한 선단들은 실제 바다에선 최대 출력으로 조업에 나선다. 조잡한 납땜 봉인이야 힘줘서 ‘후두둑’ 해체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적발된 사례는 없다. 이번 경남도의 조사에서도 봉인을 해체한 고출력 엔진이 거론됐지만 실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봉인을 해체한 상태에서 규정출력을 넘겨 조업하는 현장을 적발하지 않고서는 단속이 어렵다는 것이 경남도 등 관련 당국의 설명이다.

    또 고출력 엔진은 선박검사에서도 걸러지지 않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하는 어선검사는 건조검사, 정기검사, 중간검사, 임시검사 등으로 나눠 실시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정기검사는 매 5년마다, 중간검사는 정기검사 후 2~3년 사이에 한 번 받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어선검사는 선박 안전과 관련된 항목 위주의 검사여서 고출력엔진의 봉인 해체 여부는 살피지 않는다. 살피더라도 조잡한 납땜 봉인을 다시 붙여 검사받으면 그만이라는 게 어민들의 말이다.

    ◇고출력 엔진 단속해야= 결국 기선권현망 선단들이 규정 이상의 출력으로 조업할 수 있었던 것은 관련 당국이 눈감아 줬기에 가능했다.

    선박검사를 맡고 있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은 눈속임이 뻔한 조잡한 봉인을 이유로 고출력 엔진을 통과시켰고 단속과 관리의 책임이 있는 경남도 등 수산당국은 현장적발이 어렵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기선권현망 선단들은 더 큰 그물을 끌기 위해 경쟁적으로 본선을 불법 개조·증축하기에 이르렀고 선단 간 갈등으로까지 비화됐다.

    어민들은 기선권현망 선단의 불법 개조·증축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출력 엔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선권현망 선단들이 본선의 덩치를 아무리 키운들 고출력 엔진 없이는 아무 소용없기 때문이다.

    한 선주는 “기존 350마력 엔진보다 더 비싼 고출력 엔진을 굳이 봉인을 걸어가며 장착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며 “봉인을 풀고 최대 출력으로 조업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봉인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불법을 눈감아 준 것부터가 잘못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ksh@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김성호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