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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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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마음 돌봄- 오경조(원불교 신창원교당 주임교무)

  • 기사입력 : 2020-03-30 20: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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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청소를 해도 우리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옷장 위, 책상 밑, 침대 아래쪽의 공간들이 그렇다.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침대 아래의 공간을 인간의 무의식에 비유했다. 침대 아래에서 발견되는 것들은 무심하게 쌓인 먼지이거나, 잃어버린 양말 한 짝, 굴러 들어간 그 무언가들은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것을 ‘미처 처리하지 못한 감정이 저장된 곳’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들 마음에 일어나는 반응과 감정 중에서 햇살 아래 내놓지 못한 것들이 곰팡이 핀 양말 한 짝처럼 숨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침대 아래 공간 같은 무의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할 때 이따금 숨었던 곳들을 기억한다. 투명한 유리창 뒤, 식탁 다리 밑에 숨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니까. 하지만 내 몸 하나를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숨겨주는 공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옷장 속, 두꺼운 커튼 뒤에는 얼마든지 숨을 수 있다.

    숨바꼭질하는 아이가 옷장 속, 커튼 뒤에 숨는 것처럼 우리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하나, 둘 쌓여 있음을 생각해 본다. 날이 저문 뒤 우리를 찾아오는 어둠은 훌륭한 스승과 같다. 햇살이 환하게 빛나는 세상에서는 진가를 알 수 없던 것들이 돌연 빛나고,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빛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다.

    뜻하지 않은 재난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얻은 시간이 어찌 보면 지금 우리에게 훌륭한 스승의 역할일 수 있다. 이 스승을 빛 삼아 그동안 미처 다스리지 못했던 침대 아래 공간 내 무의식을 비춰보고 꺼내보자. 그래서 웅성거리는 욕심을 다스리고, 상처받은 마음, 지지받고 싶은 마음들을 돌보는 시간을 갖자.

    올봄 ‘마음 돌봄’에 공들여 우리 함께 다시 한걸음 내디딜 수 있는 큰 힘이 되길 바라며.

    오경조(원불교 신창원교당 주임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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