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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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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엄마” 라는 말…- 오영민(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0-03-12 20: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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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련꽃 활짝 웃는 환한 봄날, 우듬지 끝 까치 한 마리 지저귐이 참 정겹다. 엄마의 고들빼기김치 그 손맛이 그리운 날, 또르르 볼을 타는 눈물 한 방울에 잠시 생각에 젖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는 동안 가장 많이 불러보았을 그 언어 “엄마”라는 말 , 그 누구도 그 이름을 거역하진 못할 것이다.

    나 또한 딸로 태어났기에 부를 수 있는 날들과 들을 수 있는 날들이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벅찬 감동이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 “엄마” 하고 부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고 살짝 가슴이 뜨거워진다.

    3월이면 늘 그랬듯 벚꽃 나무 하얀 웃음이 눈부시게 세상을 비추인다. 그 하얀 웃음의 꽃이 어느 날 엄마의 머리맡에 수많은 알약으로 조명처럼 쏟아지리란 걸 그 날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든 나의 두 손과 개나리처럼 노랗게 물든 엄마의 얼굴이 겹치던 날 무덤덤하게 병원 문을 나서다 하늘을 보았을 때, 그 눈부신 하늘을 원망하게 되리란 것도 그날 나는 몰랐다. 언제부턴가 하늘을 보는 날보다 땅을 보고 걷는 날들이 많았던 탓에 그날 그 하늘이 푸른빛이었는지 회색빛이었는지 기억에 묻어두기도 전에 왈칵 쏟아진 두려움이 먼저 통증으로 다가왔었기에…

    그렇게 봄꽃같이 져버린 이별, 하늘은 너무도 무덤덤하게 내게서 엄마를 데려갔다. 품안에 자식이라 했던가. 요즘 딸들의 대답은 “내가 알아서 한다.” 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한마디인 것은 알지만 나는 늘 그 대답이 서운하기만 하다. 그럴 때마다 부쩍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이 엄마에게 얼마나 서운한 말이었는지를 고스란히 다시 돌려받고 있는 요즘에서야 알아서이다.

    지금의 나에게도 내가 알아서 해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비오는 날도 바람 부는 날도 날씨 탓을 핑계로 안부를 묻던 엄마의 전화에 나는 늘 내가 알아서 한다고 짜증 섞인 대답만 하지 않았던가. 어느 날은 이유 없이 바쁘다고 귀찮다고 전화를 받지 않은 날도 있지 않았던가.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습관처럼 엄마의 번호를 눌러본다. 미치도록 불러보고 싶은 그 말 “엄마”, 그렇게 지워진 엄마의 목소리는 끝내 부재중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그렇게...

    개학이 늦어진 대학생 딸들이 잠시 내 품으로 돌아와 집밥을 먹고 있다. 오는 날 보다 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아진 딸들을 보며 참 많이도 서운했는데, 지구를 덮쳐버린 낯선 이름, 사람의 세상 속으로 달려든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기숙사가 아닌 집에서 예기치 않게 머무르는 중이다.

    그 어떤 음식보다 엄마 밥이 제일 맛있다는 딸들과 함께 먹는 집밥은 잘 버무려진 봄동 나물처럼 상큼 달달하고, 살짝 끓어 넘치는 찌개처럼 향기 짙으며, 세상 다 얻은 듯 즐겁다. 그거였다. 엄마의 행복이란 것이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밥 속에 있었다는 것을, 서운하고 미안함의 양념이란 것을, 오물조물 씹는 모양이 처마 밑 짹짹거리는 새끼제비의 주둥이처럼 사랑스럽다는 것을. 문득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불러 볼 수 있을 때 많이 부르고 들을 수 있을 때 많이 들어두자 “엄마”라는 말. 홍매화 영그는 봄밤, 별도 달도 환한 밤, 엄마여서 행복했을 엄마를 불러본다. 저 멀리 별똥별 하나 선을 긋는 봄밤이다.

    오영민(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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