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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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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18) 파안대소(破顔大笑)

- 얼굴이 부서질 정도로 크게 웃다.

  • 기사입력 : 2020-03-03 0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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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기(禮記)에 “이웃에 초상이 나면 방아 찧는 사람들이 서로 노랫가락을 맞추지 않고, 마을에 빈소가 있으면 골목에서 노래하지 않는다.(有喪, 不相, 里有殯, 不巷歌.)”라는 구절이 있다.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의 슬픔이나 어려운 상황에 동정해 위로를 보낸다는 것이다. 곧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문상(問喪)을 가거나 문병(問病)을 가는 목적도 어려운 일에 마음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남의 장례에 문상을 가서 큰 소리를 내면서 웃는다든지 말다툼하는 것은 안 된다. 음식도 주는 대로 먹어야지, 고르면 안 된다. 문상 간 목적이 밥 먹거나 술 마시거나 아는 사람 만나러 간 것이 아니고, 오로지 조의를 표하고 상주를 위로하기 위해 갔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공자(孔子)께서는 상(喪)을 당한 사람의 곁에서 음식을 배부르게 드신 적이 없었다.(子, 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라는 구절과 “공자께서 어떤 날 누구의 죽음을 두고 곡(哭)을 했으면, 그날은 노래하지 않으셨다.(是日, 哭則不歌.)”라는 구절이 있다. 상을 당한 사람의 옆에서 맛있는 음식을 챙겨 배 불리 먹고, 문상하러 갔다 와서 금방 노래한다면, 애도하는 뜻이나 상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는 뜻이 없는 것이다. 모든 말과 행동은 그 상황에 맞는 것이 있다.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한 봉준호 감독 일행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아주 즐겁게 보냈다. 그 정도의 영화를 제작해서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성가를 높인 영화팀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격려하는 일은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시점과 분위기가 문제다. 그날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무한(武漢) 폐렴(肺炎)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고, 감염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 급속도로 전파되어 가던 시점이다. 이 팀을 만나기 직전에 대통령은 대구시장과의 전화를 통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받았다.

    그날 대구의 한 지인이 전한 대구의 분위기는 폐허와 공포의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날 오찬에서는 어떻게 그렇게도 웃을 일이 많았는지? 김정숙 여사는 뒤로 넘어져 다칠까 겁이 날 정도로 크게 웃는 사진이 그 다음 날 신문에 실렸다. 전형적인 파안대소(破顔大笑)다.

    초대를 전염병이 좀 진정된 다음으로 미루든지, 오찬을 해도 사진을 공개하지 말든지, 아니면 오찬을 하면서 그런 전국적인 분위기를 생각해서 좀 정숙하게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무튼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들이나, 치료와 방역에 여념이 없는 의료진이나 공무원들의 심정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세상에서 노는 사람들 같았다.

    그 장면을 실수로 공개한 것은 아니고,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비서들이 대통령 내외분이 영화 등 문화에 관심이 많고 이해가 깊다는 것을 보여주어 젊은 사람들의 표를 얻으려는 의도가 아닌가 한다.

    * 破 : 부술 파. * 顔 : 얼굴 안.

    * 大 : 클 대. * 笑 : 웃음 소.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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