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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변화하는 기업과 사라지는 기업-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 기사입력 : 2020-03-01 2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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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의 중앙대로 변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은행나무들 곁에서 멀대같이 웃자라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우연히 하늘을 올려보다가 붉은 홍시들이 개구리 알처럼 알알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동지를 지나 섣달인데도 아직 감이 많이 달려있다. 저토록 많이 열렸던 것은 아무래도 도심의 척박한 환경 탓인 듯하다. 이는 일종의 ‘앙스트블뤼테(Angstblute)’이다.

    앙스트블뤼테는 불안(Angst) 속에 피는 꽃(blute)이라는 뜻의 독일어이다. 환경이 열악해지면 생존이 불안해진 식물들이 유난히 화려하게 꽃피운다. 열매를 많이 맺어 종족 보전의 기회를 키우려는 자연의 섭리이다. 앙스트블뤼테를 꽃피운 전나무는 명품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재가 되어, 불안과 고난을 지극히 아름다운 소리로 승화시킨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다르지 않다. 인간도 생존이 불안한 분쟁지역에서 출산율이 높고, 전국시대에 가장 찬란한 문학과 철학의 앙스트블뤼테를 꽃피웠다.

    주역(周易)에서 ‘궁(窮)하면 변(變)하여야 하고, 변하면 통(通)하며, 통하면 지속(久)될 수 있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고 하였다. 고난이 닥쳤을 때는 변화를 모색하고, 그 변화로 새로운 통하는 길을 찾아내어 지속성을 확보하라는 가르침이다. 앙스트블뤼테는 자연이 선택한 궁즉변(窮則變)이다. 이 주역의 가르침을 모든 생명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다.

    기업도 자연의 생명체들과 다르지 않다. 경영환경이 힘들고 불안해지면 그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변화를 도모한다. 변화가 말처럼 쉽겠는가. 강한 저항과 극심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생존은 그런 아픔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다. 고통에 찬 변화의 결과가 기업의 앙스트블뤼테이다. 기업의 변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추진될 수 있겠지만, 대체로 성장 엔진이나 핵심 역량을 전환하기 위한 연구개발에서 이루어지고, 그 결과물은 신제품이나 발명의 모습으로 구현되어, 대부분 특허로 귀결된다. 결국 기업의 앙스트블뤼테는 ‘특허’라 할 수 있다. 상황이 힘들수록 더 많은 특허가 화려하게 도출되는 모습을 본다.

    그러면 경남지역 기업들은 지금의 경영 환경에 얼마나 불안을 느끼고 있고 그에 따른 앙스트블뤼테는 어떠할까? 지난 1월에 보도된 창원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창원지역의 제조업체들의 기업경기전망(BSI)은 ‘64.6’으로서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런데 사업계획은 81.5%가 보수적으로, 18.5%만이 공격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한다. 변화의 필요를 모르는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다. 궁즉변(窮則變)하라는 주역의 가르침에 반하는 모습이다. 경기 전망과 변화 의지에 괴리가 있다.

    특허출원의 추이도 확인해 보았다. 작년 한 해 전체 국내 특허출원 건수는 약 22만 건이고, 출원인이 경남 소재인 출원이 6345건이니, 약 2.9%의 점유율을 보였다. 경남의 국가 GDP 기여율(2018년 5.82%)에 비해 많이 낮을 뿐만 아니라, 직전 2년의 점유율(3.21%, 3.06%)에 비추어 감소폭이 크서 다소 걱정스러운 추세이다.

    그런데 지난해 특허출원의 월별 추이를 보면 눈길을 끄는 점이 있다.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의 특허출원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연말 3개월의 건수가 전반기 6개월의 실적과 거의 맞먹는다. 뼈를 깎는 변화를 다부지게 추진하는 기업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는 웅변적 증거다. 이제 우리 지역 기업들이 드디어 앙스트블뤼테를 꽃피우려는가? 기대해본다.

    기업의 운명은 경영 환경의 종속변수이다. 가끔 스스로를 독립변수인 것으로 착각하고 환경의 변화를 원망하는 기업들이 있다. 경영 환경은 거센 파도와 같이 기업을 위협한다. 파도에 휩쓸려갈 것인가, 변화의 파도를 타며 서핑을 즐길 것인가. 그래서 두 가지 기업이 있다. 변화하는 기업과 사라지는 기업.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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