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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홍준표의 ‘풍패지향(風沛之鄕)’-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02-26 20: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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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착(敗着)이다. 4선 국회의원에 당 대표, 경남도지사를 거쳐 대권후보였던 ‘정치 거물’의 행보라고는 믿기 어렵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갈 지(之)자다. 홍준표 전 지사. 불과 한 달 전 밀양에 전입 신고했다. 총선 사무실에 ‘풍패지향(風沛之鄕)’이란 글귀를 내걸었다. 풍패는 한나라 고조인 유방의 고향이다. 즉, 왕의 고향이란 뜻이다. 고향 선거구인 밀양·의령·함안·창녕을 발판으로 대권을 쥐겠다는 야심이다. 스스로 제왕급으로 치켜세우는 극강의 자기애다. 때마침 더불어민주당이 양산을에 전략공천한 김두관 의원과 대결 가능성이 나돌았다. 김두관은 장관에 도지사를 지낸 만만찮은 경력의 정치인이다. 홍준표는 “장수는 병졸과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장수’는 몰론 본인이다. 패기를 넘어선 기고만장이다.

    현란한 달변과는 달리 처신은 ‘제왕’과 ‘장수’의 그것과는 천양지차다. 애초 고향 선거구 출마 아니면 타협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당 공천관리위가 서울 강북 출마를 종용했다. 갈수록 압박 수위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풍패지향’도 금세 내팽개쳤다. 불과 10여 일 만에 ‘병졸’이라고 깎아내렸던 김두관과 일전도 불사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수도권 못지않게 경남에도 험지가 있다. 양산을로 지역구를 이전해 출마할 의향이 있다”며 양산을 출마를 역제안했다.

    그러나 공천 면접에서 다수 공관위원은 양산은 고사하고 경남 출마 자체를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대신 서울 구로을 출마를 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준표가 완강하게 버티자 곧장 구로을에 다른 인물을 공천했다. 서울 험지 아니면 경남에는 절대 받아주지 않겠다는 압박이다. 김형오 공관위원장은 국회의장을 지낸 노련한 정치인이다. 담판을 짓겠다며 밀양 홍준표 사무실에 들이닥친 모습은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사실을 방증했다. 전직 당 대표에 대한 예우이자 최후통첩이란 이중 포석이다. 장고의 시간을 준 김형오는 24일 쐐기를 박았다. “본인(홍준표) 의사가 더 소중한지, 아니면 공관위가 결정하는 것이 당과 나라를 위한 것인지 답은 너무 분명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 다 아는 문제”라고 했다.

    이런 기류라면 홍준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벼랑 끝에 내몰렸다. 정치생명 단절 직전이다. 노회한 정치인은 급기야 24일 막판 승부수를 띄웠다. “양산을 선거구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선거사무소도 개소했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공론화했다. 공천 심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 지역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당이 뭐라든 일단 눌러앉으면 어쩔 수 없을 것이란 버티기다. 공천에서 배제하면 무소속으로라도 뛰쳐나가 분탕질하겠다는 겁박의 의미도 내포한다. 이르면 이번 주 홍준표의 운명이 결정 난다. 현재로선 공관위가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극히 낮다. 홍준표의 선택만 남았다. 풍패지향의 ‘원대한 꿈’은 그렇게 미완의 희망 사항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단순하게 보면 밀양에서 양산으로 방향 선회다. 이 과정에서 온갖 잡음이 일고 상황은 꼬였다. 체급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몸놀림은 눈총을 받았다. 이는 결국 홍준표의 입에서 비롯했다는 게 대체적이다. 쉼 없는 페이스북 정치가 초래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일거수일투족, 끓어오르는 감정까지 여과 없이 표출했다. 결국 자신을 옥죄는 올무가 됐다. 자만이 부른 필연적 패착이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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