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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눈먼 자들의 도시-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 기사입력 : 2020-02-25 2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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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염병에 걸린 수십 명의 시민들이 상수도나 화장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에 격리된다.

    병원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에 들어오는 사람은 하루게 다르게 늘어나고, 어느덧 그 수는 수백 명에 이른다. 건물은 총을 든 군인들에 의해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고, 전화 등 통신수단도 전혀 없다. 고립무원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공급하는 음식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다른 사람이 한입 더 먹으면 내가 먹을 것이 없어진다. 격리병동에 잡혀 온 폭력배들은 완력을 이용해 남의 것을 강탈한다. 병동은 곧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변한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멀면서 이곳으로 실려왔다. 운전을 하다가 교차로에서 신호를 대기하던 중 눈이 먼 남자를 시작으로, 이 남자를 집으로 데려다 준 뒤 눈먼 남자의 차를 훔친 사람, 눈먼 남자를 병원으로 데려간 아내와 이들을 태워 준 택시운전사, 그리고 안과 의사 등이 차례로 시력을 잃는다. 실명 이외에 다른 증상은 없다.

    포르투갈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전염병의 원인이 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 말하지 않는다.

    소설가는 전염병, 실명, 격리병동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이나 폭력성과 함께 그 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인간애를 드러낸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 전체가 큰 시련을 겪고 있다.

    길거리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도심의 가게는 문을 닫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식료품을 사 놓으려는 사람들로 대형마트만 반짝 붐빌 뿐이다.

    공장도 멈추고, 크고 작은 행사와 회의도 속속 연기되거나 취소된다. 곧 모든 게 멈춰버릴 것 같은 분위기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에서 오는 사람들의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제는 해외 공항에서 우리 국민들이 격리되거나 입국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라의 위신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현재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의 기세가 언제 꺾일지 알 수는 없다.

    당분간 감염자가 늘어나고 경제는 삐걱거리고 민심은 더욱 흉흉해질 것이다.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악화될 경우 인간의 이기심이 어떻게 드러날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의 의료 수준 등을 생각할 때 ‘눈먼 자들의 도시’에 등장하는 그런 격리병동이 만들어질 리 만무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 감춰져 있는 탐욕은 언제라도 불거져 나올 것이다.

    지금도 밑도 끝도 없는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리고,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데 필요한 마스크를 매점매석하고, 조회수를 늘리려 조작된 영상물을 유튜브 등에 올린다.

    전염병이 급속도로 번져 나가는 이 위태로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감염의 고통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이때,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위로하는 인간애는 난관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된다. 이웃의 아픔을 짓밟으며 제 욕심을 채운 격리병동의 야비한 폭력배를 멀리하고, 생지옥 같은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안과 의사의 아내’를 가까이 두자.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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