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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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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잊지 못할 일들- 이종철(창원시보건소장·성균관대 의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20-02-24 20: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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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교직 생활 초년병의 일이다. 척추디스크로 심하게 고생하던 아내는 나 모르게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해 치료받았지만 어느 것도 효력을 보지 못하고 급기야 수술이라는 최종적 방법을 선택하며 병실 침대에 누워야 했다. 수술을 끝마쳤지만 마침 나는 학회 참석 때문에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 병실을 찾았다.

    아내의 첫 마디는 ‘환자가 되어 병실에 누워보니 당신보다 흰 가운을 입은 주치의 선생님이 더 기다려진다’는 농반진반의 투정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주말이 되면, 병원 일에만 파묻혀 지내기보다는 가족하고 지내주기를 바랐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준 셈이다. 가족 건강을 옆에서 챙기진 못해도,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백점짜리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는 아내의 격려에 무엇보다 힘을 얻었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거나 힘들어 지쳤을 때 미국 연수 중 들려준 지도교수님의 조언을 기억한다. 당시 미국 소화기병학회에 논문을 제출할 기회가 나와 일본인 연구자에게 주어졌다. 논문 초록을 준비해 학회에 보냈으나 일본인 연구자 논문만 채택됐다. 나는 크게 낙담했고, 초조, 불면 등으로 당시 상황을 극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 지도교수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는 성경 구절을 들려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연구자는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며 초조해지면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도교수의 도움과 노력으로 귀국을 앞두고 재도전한 논문이 학회에서 채택됐다. 첫 번째 실패로 초조해만 했었다면 맺기 힘든 결실이었다. 당시 조언은 내 마음에 항상 새기고 있는 말이다. 젊은 시절 아내의 투병과 미국 연수시 실패가 의대교수로서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졸업, 입학을 앞둔 시기지만, 지금의 상황이 퍽이나 힘든 시기에 놓인 젊은이들이 많다. 혹 앞이 안 보인다 하더라도 언제나 앞은 있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알게 되었다는 격려의 말을 하고 싶다.

    이종철(창원시보건소장·성균관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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