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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0·80년대 여성노동자들 땀의 가치를 생각한다- 이달균(경남문인협회장)

  • 기사입력 : 2020-02-18 20: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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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대, 작고한 영화배우 김희갑과 황정순이 부부로 나와 공전의 인기를 끈 드라마 ‘팔도강산’에 비친 마산은 어떠했던가? 카메라는 마산수출자유지역 퇴근 무렵 공장 노동자들의 물결을 비춘다. 회색 혹은 푸른 작업복을 입은 인산인해의 여성들, 그 종종걸음의 귀가는 마산의 풍속도였다. 어디 그뿐이던가. 한일합섬도 마산의 영화를 책임진 기업이었는데, 그 이면엔 고향 떠나와 산업역군이 된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피땀이 함께 했다.

    당시 마산이 그러했듯이 구로공단, 청계천, 부산신발공장단지 등도 그런 아픔과 보람이 교차했다. 다시 우리 지역으로 좁혀서 마산자유무역지역 얘기를 해 보자. 이곳은 1970년 1월 특별법인 「수출 자유 지역 설치법」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설치된 외국인 투자유치 전용 공단이었다. 이 공단이 설치되면서 마산은 당시 번성했던 한일합섬과 함께 산업도시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고, 경남의 한 도시가 아니라 한국 산업화의 상징적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하지만 마산수출자유지역은 산업도시의 분명한 빛과 그림자였다. 이로 인해 마산은 7대 도시로 성장하였고, 창동은 서울 명동 다음 가는 부동산 시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 반면 아름다운 합포만은 오염바다의 대명사가 되었고, 마산 유일의 해변 휴양지였던 가포는 폐쇄되었으며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신마산 앞 합포만이 거대한 매립지로 변한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합포만은 낮에도 노을에 물든 것처럼 붉은빛을 띠었고, 달걀 썩는 냄새가 났다. 펄펄 뛰는 상어가 경매장에 올라올 정도로 활황이었던 어시장이 쇠퇴하고, 일명 ‘홍콩바’라 불리던 횟집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 이후 마산은 이름마저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고통은 그들 노동자들의 탓은 아니다. 변화무쌍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지만 우리들 산업 맨 저층에서 땀과 맞바꾼 그녀들의 노동은 값지고도 소중하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갯벌문학동인’을 만들어 노동과 문학의 가치를 실현한 이들도 있었다.

    2월부터 6월까지 창원시와 경남문인협회는 공동으로 70·80년대 한국여성노동자들의 수기공모사업을 펼친다. 산업화의 상징도시였던 창원에서 그 값진 노동의 가치를 되새겨보자는 의미다. 벌써 60~70대가 되었기에 지금이 아니면 영영 묻혀버릴 수도 있는 기억이기에 이 사업의 중요성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당시의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한국현대사의 굳건한 레일이 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을까. 수기는 분명 아름답고도 눈물겨울 것이다. 박봉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잇고, 동생들의 학자금을 댄 지난날의 회상은 생생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는 아픔이었으나 지금은 추억이 되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공단 불빛 속에서 청춘을 보낸 여성 노동자들의 절절한 수기가 기대된다.

    이달균(경남문인협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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