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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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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네- 송찬호

  • 기사입력 : 2020-01-30 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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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운 홀몸 그 종지기가 죽고

    종탑만 남아 있는 골짜기를 지나

    마지막 종소리를

    이렇게 보자기에 싸 왔어요

    그런데 얘야, 그게 장엄한 사원의 종소리라면

    의젓하게 가마에 태워오지 그러느냐

    혹, 어느 잔혹한 전쟁처럼

    그것의 코만 베어온 것 아니냐

    머리만 떼어 온 것 아니냐,

    이리 투정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긴긴 오뉴월 한낮

    마지막 벙그는 종소리를

    당신께 보여주려고,

    꽃모서리까지 환하게

    펼쳐놓은 모란 보자기


    ☞ 꽃은 아니다. 코를 바싹 가까이 대고 맡아야 아주 희미하게 그 향을 맡을 수 있다. 대신, 모란은 꽃의 크기나 빛깔로 시선을 압도한다.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아름다운 빛깔은 온 세상에 기쁨을 전하는 종소리가 댕~댕~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종을 치던 종지기가 죽고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마지막 종소리를 꽃잎으로 싸와서 풀어놓은 그 시각, 세상은 어찌 귀하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모란 꽃잎 속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가 삭막하게 메말라가는 사람의 마음을 적시고 세상을 적시고 그리하여 오월이, 아니 한 해가, 한평생이, 그렇게 모두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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