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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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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떡국과 자동연필통- 옥영숙(시인)

  • 기사입력 : 2020-01-28 20: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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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던 어른들 말씀에 까치는 언제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사인 줄 알았다. 까치가 설날을 지내야만 우리 설날도 오는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토록 설날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는 나이 한 살 먹는 떡국과 새 옷을 입는 즐거움 못지않게 세뱃돈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새해아침에 떡국을 두 그릇 먹으면 나이를 두 살 먹어서 금방 학교에 갈 줄 알았다. 어려서 고모댁이랑 같이 살았던 우리 집은 사촌 언니랑 오빠가 나의 우상이었다. 새하얗게 풀 먹인 정갈한 교복에 갈래머리 언니는 세상의 누구랑 비교해도 제일 멋지고 예쁜 여학생이었다. 반듯하게 들고 다니던 책가방조차 부러웠다. 떡국을 두 그릇 먹고 배가 아팠지만 아프고 나면 나이를 두 살 더 먹어 얼른 언니처럼 여학생이 될 줄 알았다.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나는 배만 아프고 나이는 그 자리에 있었다. 또한 어느 집부터 가야 세뱃돈을 잘 받을까 궁리하던 섣달 그믐밤은 길고 길기만 했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어르신께 세배 드리고 덕담과 함께 받은 세뱃돈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고 특히 증조부님께선 언제나 정갈한 새 돈을 준비했다가 신학기에 꼭 학용품 사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처음으로 장만한 내 것이라는 물건은 자동연필통이었다. 자석이 붙어 있어 여닫을 때마다 저절로 닫히던 필통. 자랑하고 싶었고 신기하기만 해서 연필 꺼낼 일도 없으면서 수없이 열었다 닫았던 필통이었다.

    이제 소셜미디어, 모바일로 개인의 의견도 온라인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하는 직접적이고 즉시성 있는 시대에서 세뱃돈을 통해 어려서부터 관리 능력을 키워준다면 바람직하겠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거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설날에 관한 나의 기억은, 까치설날은 까치들의 설날이 아니라 작은 설날을 뜻하는 것을 안 것은 세월이 훨씬 지난 뒤였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던 어린 시절이지만 가슴속 보물상자 한편에 간직되어 있는 떡국과 자동연필통은 설날의 정겨운 추억이다.

    옥영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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