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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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왜 ‘할아버지의 경제력’인가-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 기사입력 : 2020-01-27 20: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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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 시기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아마 ‘기회의 평등’일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조국 사태’라는 이름 아래 벌어졌던 진영 간의 충돌 그 저변에는 기회의 평등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회의가 자리하고 있다.

    기회의 평등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그 옛날 조선시대의 사농공상을 들먹일 것까지도 없다. 그런 신분제도가 사라진 지 1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금수저와 은수저, 흙수저를 물고 나온 아이의 장래가 크게 엇갈리는 게 현실이다. 금이든 은이든 그런 수저를 쥔다는 것은 흙수저 아이들에 비해 훨씬 많은 기회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국회의원,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토론회나 고위 공무원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한 국회 청문회 때 위장전입이나 자녀 병역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자녀를 좋은 학교가 모여 있는 8학군에 보내기 위해 주민등록을 허위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이를 실행할 능력이 없었던 부모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추운 겨울날 최전방 고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경계근무를 서는 병사들은 군 면제를 받은 신의 아들이나 보충역 근무를 하는 장군의 아들에 견주어 자신들을 사람의 아들이나 어둠의 자식들로 규정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서는 안 된다고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개천의 그 얕은 물에서도 전설의 동물인 용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위의식을 퍼뜨리는 꼴이다. 노력 여하에 따라 용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부를, 일을 게을리하여 성공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큰물에서 노는 아이와 개천에서 노는 아이에게 용이 될 기회를 보다 공평하게 제공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일의 순서다.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이라는 현 정부의 집권 철학을 엎어버린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의 ‘아빠찬스’에 그 어떤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글로벌 사회 이동성 지수 2020’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사회 이동성 지수는 분석 대상 82개 나라 중 25번째였다. 이 지수는 심화되는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응해 각국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개발됐다. 예상되는 일이지만, 사회 이동성 지수 상위에 오른 나라는 대부분 유럽에 몰려 있다. 일부 언론은 한국이 미국(27위)보다 높다고 기사의 제목을 달고 있지만, 우리의 경제발전 수준을 감안하면 지금보다 훨씬 높여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보고서는 서문에서 “사회 경제적 이동성을 위한 길을 만들어 모두가 성공을 위한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기교육을 받은 뒤 8학군에 들어가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여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금수저와 은수저의 길은 아버지의 경제력이 모자랄 경우 할아버지의 경제력을 빌려서라도 이룬다는 그 농담이 지금의 한국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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