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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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10) 진퇴유의(進退有宜)

- 나아가고 물러남에 알맞음이 있어야 한다.

  • 기사입력 : 2020-01-07 08: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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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무총리로 임명된 정세균(丁世均) 전 국회의장은 정말 입지적인 인물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자, 고등학교 때 교장에게 대학 학비를 좀 대달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대담하게 썼다. 그러자 그 교장이 그냥 학비를 대 준 것이 아니고, 일을 시켜 학비를 벌게 해서 대학을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대학 총학생회 회장 등을 하며 지도력을 발휘했다. 졸업 후 쌍용그룹에 들어가 12년 만에 상무에 진급했다. 1995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진출해 6선 의원이 됐다. 한 번도 낙선한 적이 없었고, 그것도 당선이 가장 어려운 종로구에서 2번 연속 당선됐다. 마침내 대한민국 국회의 수장(首長)인 국회의장에 선출됐고, 임기를 잘 마쳤다.

    그동안 상공부장관, 여야 당 대표 등 재계 정계 행정계를 두루 거친 경륜이 풍부한 원로가 됐다. 단 한 번도 비리에 연루된 적이 없고, 사생활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었다. 매너가 좋아 국회 출입기자들이 선발하는 가장 신사다운 국회의원에게 주는 백봉신사상을 12번이나 받았다. 이 정도의 인물이 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애의 후반기라 할 수 있는 시점에서 국무총리직을 수락한 것은, 마지막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지낸 이가 5위인 국무총리로 가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김진표 전 부총리가 거론되다가 민노총 등의 반대로 대타 후보로 정 의장을 지명했다.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대통령이 삼고초려(三顧草廬)했기 때문에 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옳지 않으면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十顧草廬)를 해도 안 간다고 해야 한다.

    결국 본인이 하고 싶기 때문에 수락한 것이다. 그러나 국무총리 자리를 거절한 전 국회의장 정세균과 국무총리에 취임한 전 국회의장 정세균은 앞으로 어느 것이 더 나을까?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13번의 벼슬을 내렸을 때 다 사양했다. 남명은 은자가 아니고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분이다. 벼슬에 나갈 때가 아니고, 국왕이 같이 정치할 자질이 안 되고, 내려진 자리가 어떤 경륜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 나간 것일 뿐이다. 나아가느냐 물러나느냐에 알맞음이 있는 것이다.

    중국 속담에 “음식을 만들 때는 불의 상태를 잘 따져야 하고, 사람답게 되는 데는 사소한 것에 주의해야 한다.[做菜講究火候, 做人注意分寸]”라는 말이 있다.

    서예가가 작품을 잘 썼는데, 마지막에 낙관을 잘못하면 작품 전체를 망친다. 사람이 한평생 잘 살아오다가도 마지막 마무리를 잘못하면 앞에 쌓은 공적을 다 망쳐버린다.

    * 進 : 나아갈 진. * 退 : 물러날 퇴. * 有 : 있을 유. * 宜 : 알맞을 의.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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