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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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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745) 제25화 부흥시대 55

“죄송합니다”

  • 기사입력 : 2020-01-07 0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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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는 파도가 높게 일고 있었다. 난간을 잡지 않으면 비틀거려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선원들이 나와서 승객들에게 선실로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영국 상선이었다.

    이재영은 선원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손짓이나 몸짓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선실은 1등실과 3등실로 나뉘어 있었다.

    박민수는 이재영만 1등실 표를 끊고 자기들은 3등실 표를 끊었다. 1등실에는 침대도 있었다. 이재영은 멀미를 하는 김연자에게 1등실을 내주고 자신은 박민수 등과 함께 3등실에서 쪼그리고 잠을 잤다. 배가 흔들려 잠자리가 어수선했다.

    홍콩에는 아침에야 도착했다.

    “괜찮은가?”

    1등실에서 부스스한 얼굴로 나오는 김연자에게 물었다.

    “네. 죄송합니다. 제가 1등실을 써서….”

    김연자의 얼굴이 창백했다.

    “배에서 내리면 아침부터 먹자고. 뱃속이 든든하면 좀 나을 거야.”

    배에서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부두에 내리자 열기가 훅 끼쳐 왔다. 홍콩은 비교적 더운 지방이었다. 부두 근처의 식당에서 우동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중국 남동부 지방에 있는 구룡반도와 홍콩섬을 비롯하여 작은 섬 몇 개가 합쳐진 도시였다.

    ‘홍콩은 자유분방하구나.’

    이재영은 택시의 창으로 홍콩거리를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홍콩은 중국 땅이었으나 여전히 영국이 다스리고 있었다.

    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언어다. 홍콩의 중국인들은 얼굴과 체격이 한국인과 비슷했으나 언어가 확연히 달랐다. 이재영은 호텔에서 여장을 푼 뒤에 나츠코와 아들이 경영하는 상점에 들러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행하게도 나츠코는 만날 수 없었다. 이재영이 도착하기 사흘 전에 나츠코가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우리 운명이 이렇게 엇갈리는구나.’

    이재영은 실망했다. 나츠코의 아들은 이름이 다케다였다.

    “어머니로부터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나츠코의 아들은 단정하게 양복을 입고 있었다. 전쟁에 나가서 필리핀에서 미국의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예의바르고 정중했다. 이재영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가? 아버님은 어떠신가?”

    다케다는 나츠코를 닮은 것 같았다.

    “아버님은 1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전쟁을 몹시 증오하셨습니다. 일본이 크게 잘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츠코의 남편이 후회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일본 군인이었다.

    그는 왜 후회를 한 것인가.

    일본은 미국에 항복한 이후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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