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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744) 제25화 부흥시대 54

‘서예가 마음을 안정시키는구나’

  • 기사입력 : 2020-01-06 08: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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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검정에서 돌아온 것은 날이 어두워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밤에는 변두리 출입을 삼가야 했다. 서울 변두리라고 해도 밤에는 공비들이 출몰할 가능성이 있었다.

    ‘세검정이 경치가 좋아 전쟁이 끝나면 그곳에 살아야겠구나.’

    이재영은 세검정 골짜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재영은 세검정에서 돌아온 다음날부터 서예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붓으로 천자문을 쓰기는 했으나 오랫동안 붓을 쓰지 않았다.

    ‘서예가 마음을 안정시키는구나.’

    이재영은 한가할 때는 사무실에서도 붓글씨를 썼다.

    그러다보니 옛날의 서예가들에게도 관심이 많아졌다.

    이재영은 골동품 가게에 들러 글씨를 사고 그림도 샀다.

    전쟁 때문에 고미술과 골동품을 헐값으로 살 수 있었다.

    ‘이게 대원군 이하응의 그림인가?’

    대원군 이하응의 석파란도 사고 글씨도 샀다.

    대원군 이하응의 글씨에는 힘이 느껴졌다.

    諸葛大名垂宇宙(제갈대명수우주)

    宗臣遺像肅淸高(종신유상숙청고)

    三分割據紆籌策(삼분할거우주책)

    萬古云宵一羽毛(만고운소일우모)

    제갈량이 이름을 세상에 떨치니

    승상의 높은 이름 맑고 엄숙하다

    천하삼분 책략을 세우니

    만고의 밤하늘에 나는 깃털이어라

    두보의 당시에서 발췌하여 쓴 글이다.

    여름이 한창이었으나 전쟁은 여전히 고지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휴전회담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크게 진척이 없었다.

    이재영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 부산에서 배를 타고 홍콩으로 향했다. 홍콩은 초행이었으나 박민수와 김연자가 동행했다. 무역회사 직원 2명도 그를 수행했다.

    ‘오래간만에 배를 탔구나.’

    갑판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자 인간이 한없이 왜소한 기분이 들었다.

    “회장님께서는 멀미하지 않으십니까?”

    박민수가 옆에 와서 물었다.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남자들은 괜찮은데 김연자씨가 멀미를 하고 있습니다.”

    “쉬게 하게. 잠을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예.”

    박민수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이재영은 갑판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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