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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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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742) 제25화 부흥시대 52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 기사입력 : 2020-01-02 07: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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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영은 미월의 무릎을 베고 누워 다산 정약용이 세검정에 대해 남긴 기록을 생각했다. 세검정은 조선시대에도 이름을 떨쳐 많은 시인묵객들이 기록을 남겼다.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 폭포를 보는 것뿐이다. 그러나 비가 막 내릴 때는 사람들이 수레를 적시면서 교외로 나가려 하지 아니하고, 비가 갠 뒤에는 산골짜기의 물도 이미 그 기세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정자는 근교에 있으나, 성 안의 사대부 중에 정자의 뛰어난 경치를 만끽한 사람은 드물다.

    신해년(1791, 정조 15) 여름에 나는 한혜보 등 여러 사람과 명례방(明禮坊)에 모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뜨거운 열기가 찌는 듯하더니 검은 구름이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고, 마른 천둥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나는 술병을 차고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폭우가 쏟아질 징조이다. 제군들은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는가. 만약 가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주(罰酒) 열 병을 한꺼번에 주겠다.’

    하니, 모두들,

    “이를 말인가.”

    하였다.

    이리하여 마부를 재촉하여 나왔다. 창의문(彰義門)을 나서자 빗방울이 서너 개 떨어졌는데 크기가 주먹만 하였다. 말을 달려 정자의 밑에 이르자 수문(水門) 좌우(左右)의 산골짜기에서는 이미 물줄기가 암수의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듯하였고, 옷소매도 또한 빗방울에 얼룩졌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펴고 난간 앞에 앉아 있으려니, 수목은 이미 미친 듯이 흔들렸고 한기(寒氣)가 뼈에 스며들었다. 이때에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산골 물이 갑자기 흘러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은 메워지고 물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였다. 흘러내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내리치는 물속에 마구 쏟아져 내리면서, 물은 정자의 초석(楚石)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형세는 웅장하고 소리는 맹렬하여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오들오들 떨려 편안치가 못하였다.

    내가 묻기를,

    “어떻소?”

    하니, 모두 말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고 했다.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고 익살스러운 농담을 하며 즐겼다. 조금 있자니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혔으며 산골 물도 점점 잔잔해졌다. 석양이 나무에 걸리니, 붉으락푸르락 천태만상이었다. 서로를 베고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

    다산 시문집에 있는 기록이다. 정약용은 소나기가 내릴 때 세검정 골짜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장쾌한 물줄기를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세검정은 석파정과는 다르다.

    석파정 아래쪽에 있는데 석파정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도 장관이었다.

    과연 시간이 흐르자 골짜기에서 물이 콸콸대고 흘러내려 절경을 이루었다.

    기생들은 웃고 떠들다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처럼 밖으로 나온 탓에 기생들도 들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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