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기고] 곁을 내어주는 지혜, 하동 문암송(文岩松)- 박금석(하동부군수)

  • 기사입력 : 2020-01-01 20:19:53
  •   

  • ‘바위를 품은 소나무’, ‘소나무를 품은 바위’라 할까. 이곳에 올라서면 너른 들판과 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와 섬진강이다. 이 소나무와 바위가 하나의 몸둥아리로 600여 년 동안 동고동락을 해온 하동군의 ‘문암송(文岩松)’이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491호다.

    문암송은 처음부터 하나의 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 살기 위해 티격태격 싸웠을 것이고 심지어 극한 대립까지도 갔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떨어져나간 바위 조각이 증명한다. 둘 중에 하나는 끝을 봐야 할 상황이었겠지만 결국은 공생의 길을 택한 것이다. 서로가 들어올 수 있는 곁을 내준 것이다.

    바로 인근에 있는 지리산 회남재로 올라가보자. 동으로는 형제봉, 서로는 구재봉, 북으로는 시루봉이 감싸주고, 남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한가운데 너른 들판이 마치 어머니의 배와 같이 포근하다. 지리산의 정기(精氣), 섬진강의 수기(水氣), 그리고 따뜻한 노량바다에서 올라오는 염기(鹽氣)가 합쳐지는 곳이 바로 악양면이다.

    문암송은 하동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지리산, 섬진강, 노량 남해바다가 아우르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지 않았을까. 그곳에서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바위는 소나무의 뿌리를 더 튼튼하게 감싸주고, 소나무는 바위에게 온갖 풍파를 막아주는 것이다.

    지난해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공명지조(共命之鳥)’다. 공명조는 머리가 두 개인 상상 속의 새로, 한쪽 머리가 죽으면 다른 쪽 머리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를 의미한다. 타협 없는 정치, 양보 없는 노사, 대안 없는 집단민원, 배려와 수용 없는 아파트 층간 소음 현상이 바로 공명지조가 아닐까.

    우리 사회에 만연된 극한 대립 양상은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경제적, 사회적 비용 낭비는 물론이고 서로간의 분열과 불신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논리적인 대안과 타협이 충분히 있음에도 집단행동으로 먼저 세를 과시한다.

    물론 하나의 큰 결정과 합의에 도달하기까지는 인내와 고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충분한 대화와 설득, 논쟁은 필수적이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 공정한 대안 제시가 중요하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민주주의 기본이 아닐까.

    우리가 여행을 하거나 사업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예비비와 비상금 준비 그리고 손절매와 결손처분 등을 한다. 장사꾼이 손절매, 결손처분을 단행하는 것은 지금의 손해가 미래의 이득이라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며칠 전 말다툼으로 돌아앉아 있는 집사람을 위해서라도 이번 주말에 같이 문암송이나 다녀와야겠다.

    박금석(하동부군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