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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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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새해 운수를 누가 알랴- 김태희(실학박물관장)

  • 기사입력 : 2019-12-29 20: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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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운수가 어떨까? 이맘때는 새해 운수가 어떨지 알려주는 게 많다.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새해가 아니더라도 일이 잘 안 풀려 답답한 때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간다. 입시, 진로, 취업, 결혼 등을 앞두고 응원하는 가족들은 상담(?)하러 점쟁이를 찾아간다. 요즘 명리학이 뜬다고 한다. 예나 이제나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은 마찬가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살았던 때엔 별을 보고 예언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령 이렇게 말한다. “형혹성이 심성을 차지했으니 간신이 권세를 휘두를 조짐이다”, “천랑성이 자미성을 침범하니 내년에 병란이 일어날 조짐이다.” 다산 선생은 일축했다. 별의 행로란 법칙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별은 제 궤도를 따라 돌 뿐인데, 저런 식으로 예언하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짓이다.

    다산 선생은 ‘오학론’이란 글에서 이런 점성술을 포함해 점치는 것, 관상 보는 것 등을 모두 ‘혹술’이라 했다. 지혜로운 옛 성현도 재앙을 미리 알지 못해서 고초를 겪곤 했는데, 미리 아는 자를 찾아 기대려는 것은 미혹된 일이라고 했다. 미래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단호한 다산 선생의 말씀에 모두들 재미없어 할지 모르겠다.

    필자의 어머니도 가끔 점을 보러 가셨다. 이번엔 누가 맞았다며 후일담을 하시는 걸 보면, 점집을 한 군데만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복채가 좀 들었을지언정 점쟁이에게 휘둘려 문제될 것까진 없어 보였다. 어머니를 보면, 오히려 점쟁이들이 사회심리 안정화 기능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간혹 사나운 말로 겁을 주는 점쟁이도 있지만, 베테랑 점쟁이는 나름대로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격려해 주기도 한다. 어려운 때 찾아가면, 동쪽에서 귀인이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누가 귀인일까. 어떤 때는 좋은 일이라며, ‘호사다마’이니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거의 여름엔 물조심, 겨울엔 불조심 수준이 아닌가.

    점쟁이들이 활용하기도 하는 ‘주역’을 보면, 완벽하게 좋은 괘도, 완벽하게 나쁜 괘도 없다. 계절이 바뀌듯 바뀌는 게 운이다. ‘주역’의 가르침을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는 말로 요약하는데, 궁할 때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사람의 몫일 따름이다.

    연초에 필자가 오래 몸담았던 연구소를 그만두었다. 고민 끝에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다른 대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6월에 갑작스런 박물관 관장 공모를 접했다. 이에 응하게 되었는데, 연구소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아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올해 일들을 돌아보니, 화 속에 복이 있고 복 속에 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 또 어떻게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의 앞날을 누가 알랴! 2020년 새해에 일어날 일이 모두 화일 수도 없고, 모두 복일 수도 없다. 화인 것처럼 보였으나 복의 근원이고, 복인 것처럼 보였으나 화의 근원일 수 있다. 하나의 일에서 화와 복이 동시에 나올 수도 있다. 인간에게 필연적인 죽음의 문제를 논외로 치고 나면, 분명한 것은 새해 1년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선물로 받은 2020년을 어떻게 보낼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다산 선생은 ‘어사재기’란 글에서, “지난 일은 좇을 수 없고, 오는 일은 기약할 수 없으니, 천하에 지금 누리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오늘 내가 누리는 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앞날은 알 수 없지만, 그것도 오늘 내가 한 일과 연관된 결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모두에게 축하할 일이다. 선물 받으셨군요. 새로운 한 해를! ‘소중한 2020년’을 소중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김태희(실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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