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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글로벌 기업의 오리엔탈리즘-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 기사입력 : 2019-12-23 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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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이었다. 전 세계에 무려 24억 명의 가입자를 두고 있는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이 서울을 무대로 한 1분짜리 광고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A Perfect Christmas - More Together’라는 제목을 단 이 영상은 ‘모두 함께한다면,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했다.

    영상의 첫 장면은 한강변 아파트와 강 건너편 서울의 야경을 보여준다. 딱히 야경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도시는 어두컴컴하고, 고작 두 개의 고층 빌딩이 어색하게 서 있을 뿐이다. 얼핏 보더라도 컴퓨터그래픽으로 손을 댄 콘텐츠라는 걸 알 수 있다.

    한강변 그 아파트 거실, 막 이사온 아빠와 딸이 이삿짐을 풀지도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다. 아빠는 스마트폰을 들고 페이스북의 ‘한국에 있는 국외 거주인들’ 그룹에, “서울에 처음 왔어요. 피칸과 바닐라, 메이플시럽을 사려고 합니다”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한국에 처음 왔으니 모든 게 낯설 테고, 그러니 피칸이나 바닐라를 구매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광고물이 원래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것이니, “대형마트에 가면 살 수 있는데…”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해도 꾸욱 참자.

    아빠와 딸은 피칸파이를 만들 재료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 탓인지 지친 모습으로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다. 어두운 지하철 옆 좌석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의, 노숙자로 느껴질 만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때 “봉천동 시장에 가 보세요”라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그룹 멤버로부터 받는다. 페이스북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늦은 밤 봉천동 시장에 간 아빠와 딸은 이 가게 저 가게를 드나든 끝에 겨우 모든 재료들을 구한다. 물론 60~70년대의 낡고 지저분한 재래시장처럼 보이는 봉천동 시장에서 피칸파이 재료들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팬 어느 노인은 피칸을 찾는 이들 부녀에게 땅콩을 내밀기도 한다.

    어렵사리 서울에서 피칸과 바닐라, 메이플시럽을 손에 쥔 이들 가족은 맛있는 피칸파이를 만들어 먹으면서 한국에서의 첫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페이스북의 ‘한국에 있는 국외 거주인들’ 그룹의 도움이 있었기에, 즉 모두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페이스북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것이었지만, 이 영상은 역효과만 낳았다. 유튜브에 오른 이 광고영상에는 페이스북의 ‘좋아요’에 해당하는 ‘마음에 든다’보다는 ‘화나요’에 해당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한국을 비하하고 있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페이스북은 결국 이 영상물을 유튜브에서 내렸다.

    글로벌 기업이, 그것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소셜미디어 기업이 ‘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을 이르는 말인 오리엔탈리즘을 광고 전략에 사용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야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숱하게 보아 온 것이지만, 이 시기 페이스북 광고를 통해 당하고 보니 그 뒷맛이 참으로 씁쓸하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스스로도 자신의 언행을 한번 되돌아보자. ‘나는 우리보다 늦게 경제개발에 뛰어든 나라와 민족에 대해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을 갖고 있지는 않는가?’ 하고.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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