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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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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新 팔도유람] 쉼이 있는 슬로우시티 ‘경북 영양’

눈부신 오지
한낮엔 새하얀 자작나무 반짝
한밤엔 빛나는 은하수가 반짝

  • 기사입력 : 2019-12-13 07: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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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열했던 한 해가 조금씩 저문다. 덩달아 자연도 푸른 옷을 벗어 던지고 겨울 쉼 속으로 조용히 들어갈 채비를 서두른다.

    이럴 즈음 우리네 삶도 일상을 벗어나 꾸밈도, 번민했던 그 무엇도 없는 고즈늑하고 조용한 여행을 떠나 보는 게 어떨까. 전국 최고의 오지 영양군. 누군가는 영양을 ‘특별천연구역’이라 한다.

    영양의 어딜 가더라도 오염되지 않고, 사람의 개발 손길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에는 축구장 40개 보다 넓은 규모의 자작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최근 산림청과 영양군이 이곳을 생태휴양지로 가꿀 예정이다./영양군/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에는 축구장 40개 보다 넓은 규모의 자작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최근 산림청과 영양군이 이곳을 생태휴양지로 가꿀 예정이다./영양군/

    두들마을 언덕 위 아름다운 참나무.

    ◇사람의 개발 손길이 닿지 않은 천연 자작나무숲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깊은 산자락이 온통 새하얀 자작나무들로 빼곡하다. 이곳은 내륙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축구장 40개 면적보다 넓은 규모의 자작나무 숲 단지다. 이곳은 지난 1993년에 약 30ha 면적으로 조성됐다. 생태경관이 매우 우수해 올해 남부지방산림청 영덕국유림관리소에서 지역특화사업으로 자작나무숲길 2㎞를 설치,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자작나무 숲의 대표 격인 인제 자작나무 숲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줄기 굵기가 60㎝를 넘는다.

    최근 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 자작나무 숲은 인근 수비 국제밤하늘보호공원과 울진 금강송 생태 경영림, 봉화 석포 분천역과 산타마을 등과 연계해 우리나라 최고의 산림 휴양지로 가꿔진다. 자작나무 숲이 있는 죽파리는 영양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도 하루 3회 버스가 운행될 정도로 적막강산 오지다. 검마산, 일월산, 울진의 백암산 등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그야말로 수십년 동안 사람의 손길을 벗어나 오롯이 자연 그대로 자라난 자작나무들은 뽀얀 속살같은 하얀 껍질을 고스란히 간직해 눈이 시릴 정도다.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지친 심신의 피로를 그대로 풀어낼 만하다.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일대는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이곳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영양군/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일대는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이곳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영양군/

    ◇몽골 초원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경북 영양 수비 수하마을은 오지 중에 오지다. 골짝이 깊어 더 이상 갈 수 없는 세상 끝 마지막 남은 땅인 듯싶을 정도다. 이곳을 요즘 들어 찾는 이가 부쩍 늘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이다. 인공 불빛과 현대화 속에서 점점 잃어가고 있는 밤하늘과 은하수 별무리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어, 국제밤하늘보호협회가 이 일대 3.9㎢를 2015년 10월 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이곳 오무마을에서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에서 별이 얼굴로 쏟아진다’는 말이 실감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릴적 과학책이나 천체 망원경으로 경험했던 밤하늘의 그 숱한 별들과 우주가 고스란히 밤하늘에 장관으로 펼쳐져 깊은 산골짝 어둠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협회의 슬로건처럼 이곳에서는 ‘불을 끄고, 별을 켜자’라는 말이 딱 맞는 곳이다. 인공의 빛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곳은 일찌감치 반딧불이 생태공원으로도 지정, 보호받고 있다. 반딧불이의 장관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캠핑족이라면 이곳 주변에 들어선 ‘영양수비별빛캠핑장’에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요즘에는 이곳에서 ‘5G(오지) 캠핑’이 마련되고 있다. 은하수투어와 목공체험, 캠프파이어, 캠핑요리대회 등 잊지 못할 오지 캠핑을 체험할 수 있다.

    ◇구빈(救貧) 위한 참나무, 마을 버팀목으로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은 검소함이 깃들어 있다. 대의를 굳게 가졌던 선비의 청빈한 삶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영양 땅에 은둔했던 재령 이씨 문중의 석계 이시명과 그의 부인 안동 장씨 계향. 이들은 ‘가학(家學)’과 ‘구빈(救貧)’하는 삶으로 대명절의의 뜻을 폈으며,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두들마을 언덕 위에는 아름드리 참나무(도토리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다. 석계 선생 부부가 1631년 이곳에다 터를 잡으면서 심었던 나무들이다. 380여 년이 흐른 세월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선 나무가 50여 그루에 이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궁핍해진 사사람들의 가난한 살림에 보태기 위해서였다. 또 변변하지 못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석계 선생과 아들 4남의 경학이 소문나면서 이들의 초막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도토리로 끓인 죽으로 예를 다했다. 도토리로 궁핍한 인근 수백 명도 구휼했다. 지금도 언덕 위에 세월만큼 많은 가지를 뻗치고 있는 아름드리 참나무에는 석계 선생과 정부인 안동 장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교훈이 그대로 전해온다.


    장계향 문화체험 교육원.

    장계향 선생은 부친인 장흥효의 영향으로 시·서·화에 능했다. 19살 때 석계의 계실(繼室·둘째 부인)로 시집온 장 선생은 전실인 김씨 부인의 자녀를 포함해 7남 3녀를 훌륭히 키워냈다. 장 선생은 한국 전통음식의 보고(寶庫)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했다. 음식디미방은 지금으로부터 약 340년 전에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다. 딸들을 위해 지은 조리서인 것이다. 두들마을에는 몇 해 전 ‘장계향 문화체험 교육원’이 들어섰다. 이곳은 장계향 선생을 현대로 불러오는 다양한 선양, 교육 사업이 진행된다. 현존 최고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조리법을 재현해 전통음식 조리, 전통주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조리실습시설이 있다.

    또 주변 녹음과 어우러져 휴식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전통한옥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다. 부대시설로 다도체험, 전통혼례, 고택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너른 마당이 조성됐다.

    매일신문 엄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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