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29일 (토)
전체메뉴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06) 승상문우(丞相問牛)

정승이 소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 기사입력 : 2019-12-10 07:56:03
  •   

  •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 병길(丙吉)이라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다. 학문이 있고, 사람됨이 관대하였고 정치적 업적도 있어,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다. 늘 밖에 나가서 백성들의 사정을 시찰하기를 즐겨하였다.

    어느 봄날 수행원들을 데리고 시찰하러 나갔다. 얼마 지나자 길가에서 사람들이 심하게 싸워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다친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얼마 지나자 어떤 농부가 짐수레 끄는 소를 몰고 오는데, 소가 혀를 빼고 헐떡거리며 힘들어하였다. 정승은 말에서 내려서 수레를 멈추게 하고 자세히 물었다. 정승은 “소가 어디서 몇 리를 왔지?”, “평소 싣던 짐보다 많이 실었나?”라고 물었다. 농부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정승은 상황을 다 파악한 뒤 가던 길을 갔다.

    수행원들은 당연히 수군수군했다. “이상해! 정승이라는 분이 사람이 다쳐 거의 죽어 가는데도 물어보지도 않고 지나가더니, 짐수레 끄는 소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자세히 물어보고 걱정을 하니 말이야.”

    궁금해서 견디지 못했던 수행원 한 사람이 마침내 정승에게 물어 봤더니, 이렇게 답했다. “사람이 싸우다 다친 것은 장안윤(長安尹 : 서울 시장)이 알아서 다스리면 되지. 중앙정부의 정승인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나는 장안윤이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감독하여 평가하고 명령을 내리면 되지. 그러나 소가 헐떡거리는 일은 다른 일이야. 봄철이라 기온이 그렇게 높지 않을 때인데 소가 헐떡거릴 정도이니, 이는 절기(節氣)가 비정상적으로 운행된다는 증거야.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그래서 내가 소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본 거야. 농사가 잘못되면 천하 사람들이 다 굶어죽게 돼. 국가가 어떻게 되겠어?” 그 말을 듣고서야 수행원들은 정승의 큰 뜻을 알게 되었다. 이 고사는 ‘병길문우(丙吉問牛)’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중에 읽은 책 세 권을 국민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다.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책 세 권 모두 지극히 편향된 시각을 가진 김용옥 교수의 것이라는 게 더 문제다. 대한민국에는 5만여 명(전문대학 포함)의 교수가 있고, 그들이 지은 읽어 볼 만한 책들이 많이 있다. 대통령이 어떻게 다 읽어 보고 소개하겠는가? 대통령이 책 소개하려고 들면 안 된다.

    대통령(大統領)이 무엇인가? 한자 글자 그대로 ‘크게 거느리고 이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판단과 명령을 기다리는, 국가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일이 산적해 있는데도 그것은 책임지고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한가하게 편향된 시각을 가진 교수의 책이나 소개하는 것은 자기 직무가 아니다.

    * 政 : 정사 정. * 丞 : 정승 승.

    * 問 : 물을 문. * 牛 : 소 우.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