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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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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장의 추억- 전제웅(창원봉림고 행정실장)

  • 기사입력 : 2019-12-01 20: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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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집은 김장을 시골에서 한다. 고향 시골에 노모가 계시므로 우리 다섯 형제자매는 어느 주말을 김장 날로 잡아 시골집에 모인다. 김장을 하면서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각자 김장을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십수 년째 같이 모여 연중행사를 하고 있다. 누나와 나는 김장 날 하루 전인 금요일에 시골로 간다. 배추를 뽑고 다듬어서 소금물에 절이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배추가 좋아야 한다. 다음으로 배추를 알맞게 절여야 한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알맞게 절이는 것이 실력이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게 되면 수분이 빠져나가 양념이 잘 밸 수 있도록 하며 소금의 짠 성분이 재료의 변질을 막아 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양념을 만들어야 한다. 양념은 그 재료와 비율이 중요한데 양념의 재료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고춧가루와 무다. 고춧가루는 미리 빻아놓고, 무와 배, 마늘, 생강은 당일에 방앗간에서 곱게 갈아서 넣고, 파와 젓국 등을 섞어 고루고루 저어 주어야 한다. 양념의 양이 많으므로 양념을 고루 젖는 작업도 상당히 힘든 작업이다.

    김장의 하이라이트는 치대기이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는 작업을 ‘치댄다’라고 한다. 치댄다는 것은 ‘무엇에 대고 자꾸 주무르다’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말해주듯이 배춧잎 하나하나에 양념을 골고루 발라 주어야 한다. 절인 배추를 치대는 작업은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도 있다. 어린 시절 옛날이야기에 깔깔 웃기도 하고, 김장 솜씨가 느리다며 서로 흉을 보며 재미있어 한다. 치대기 작업을 한참 하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휴식을 취할 겸 저녁을 먹는데 메뉴는 짜장면이다. 예전에는 돼지 수육을 삶고 밥을 해 먹었는데 그 일이 만만치가 않다. 수육은 다음날로 미룬 것이다.

    김장할 때 어머니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노령의 연세에 크게 도움은 아니 되고 오히려 잔소리만 심하니 때때로 방해가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방식과 누나의 방식 차이로 인해 다툼이 벌어지고, 나는 보통 누나의 방식에 편을 들기 때문에 어머니는 서운해하기도 하신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아들이 편들지 않으니 무척 서운하신 것 같다.

    김장을 끝내고 “엄마, 내가 미안혀요. 김장을 하면서 엄마 의견을 무시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네” 하고 사과를 하자 어머니도 그런 일로 마음 상하지 않는다며 웃으신다. 그리고 고춧가루와 배춧값이라며 용돈을 드리면 평소에는 마다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김장을 하고 난 뒤에는 그냥 고맙게 받으신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김장을 해 주었다는 보람을 느끼시는 것 같다. 김치통을 승용차에 가득가득 싣고 떠나오면서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시골집에서 김장을 해야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해 본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밥에 김장김치를 죽 찢어 올려 밥 한술을 떠니 이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다.

    전제웅(창원봉림고 행정실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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