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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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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나에게- 박봉환(카피라이터)

  • 기사입력 : 2019-11-28 20: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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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 다시는… 이제. 이 생에 태어나지 마십시오. 아니. 다시 꼭. 이 생에 다시 태어나십시오. 태어나서 다시. 다시는 이제… 보지 말 것을 보지 마십시오. 그대는 절대. 그대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이며, 그대가 묶여있는 ‘동굴’ 밖을 상상하지도 마십시오. 그리고는 꼭. 저들의 말씀만 듣고. 저들의 목소리만 기억하면서. 저들의 ‘지폐’와 저들의 ‘법전’만을 숭배하십시오. 오직 그대 눈앞에 비치는 ‘동굴벽의 그림자’ 세상을 믿고 또 믿으십시오. 철석같이. 금석같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세상은 그저 아름다운 천국이라고. 세상은 반드시 한번쯤 살아볼만한 곳이라고. 세상은 언제나 착한 자의 편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도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파이가 커지면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곳이라고. ‘말’과 ‘글’과 ‘이미지’로 새겨진 그 세상을 믿고 또 믿으십시오. 그 화려하고 환상적인 ‘만들어진’ 세상을 믿고 또 믿으십시오. 신처럼. 하늘처럼. 그 위의 저들처럼.

    그래서 그대 꼭. 이 생에 다시 태어나. 다시는 이제 아프지 마십시오. 울지도 마십시오. 선배에게. 후배에게. 친구에게… 그대가 말했듯이. 가끔씩 안부를 묻거나 편지를 쓰듯이. 그렇게 그냥 조금만 아프고 조금만 슬퍼하세요. 그리고는 지금처럼 묵묵히. 그렇게 그냥. 그대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렇게 그렇게 그대 길을 가다가. 그대의 계절을 맞이하십시오. 저 샛노란 은행잎처럼. 그렇게 그대 역시 그대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폴·폴·폴 그대 길을 홀로 걸어가세요. 참 아름답지요? 아름답겠지요? 세상은 무심히 아름다운 그대를 또 밟고 지나가겠지만. 그래도 그대 기억해 주세요. 누군가는 한 사람. 그대를 차마 밟을 수 없어. 여린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그대를 주워 책갈피 속 한 장 한 장 그대를 끼워 넣고 있을. 그대인 그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그대 꼭 다시. 이 생에 다시 태어나십시오. 태어나서 다시는. 다시는 꼭 ‘법 없이도’ 살지 마십시오. 그대 이미 오래 전에 봤듯이.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듯이. 이 세상 그 어디? 그대 위한 법이 있던가요. 아니. 있기나 하던가요.

    박봉환(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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