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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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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비움의 여유- 김종민(편집부 차장대우)

  • 기사입력 : 2019-11-24 20: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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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충수(自充手)’란 바둑에서 자기의 수를 줄이는 돌, 즉 상대방에게 유리한 수를 일컫는 말이다. 흔히 스스로 한 행동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며 ‘자업자득(自業自得)’과 같은 뜻으로 쓴다. 비슷한 예로 ‘그는 실언을 해서 자충수를 두는 꼴이 되었다’, ‘대외 통상 문제에 대한 쇄국적 입장은 자칫 세계적 개방의 흐름 속에서 고립을 자초할 수 있는 자충수가 되기 쉽다’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이 자충수란 말을 한자 그대로 풀어 보면 ‘스스로 채워 넣는 수’라는 뜻이 된다. 스스로 빈 곳을 채워 넣는데 왜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불러올까? 그에 대한 답은 바둑의 속성에 있다. 바둑은 집을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데 그 집이라는 것이 바둑판에선 빈 공간이다. 자신의 돌이 둘러싼 빈 공간이 많아야 이기는 것이다. 결국 비워야 할 공간에 돌을 채워 넣으니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말이 된다.

    ▼사람들은 모두 욕망을 가지고 산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많이 채우고 싶어한다. 더 많이 쌓아두고 더 많이 채우면 그 모든 게 자기 것이 될 거라 생각한다. 어떨 땐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해선 안될 일도 한다. 정치인은 권력을 이용하고, 경제인은 재력을 이용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나쁜 거짓말로 욕망을 채운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채우기에 급급해 비우려 하지 않는다. 반면 정당하게 욕심 내지 않는 사람들은 채운 만큼 비우려 하는 경우가 많다. 욕심 내지 않으니 채워지는 것의 일부를 들어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욕망이 큰 사람들은 어떤 것을 채우면 또 다른 어떤 것이 빠져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빠져 나가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떨 땐 채워넣은 것보다 훨씬 소중하고 값진 것들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물질일 수도, 사람일 수도, 다른 또 어떤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것을 채우려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이 결국 자충수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마음이 맑은 어떤 날에 문득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생각난다면 그날은 채우는 것보다 한번 비워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종민(편집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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