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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사라지는 고향- 허철호(사회2부장·부국장대우)

  • 기사입력 : 2019-11-12 20: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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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곳에서 강제로 떠나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난달 초 ‘예안리 고분군’으로 유명한 김해 대동면 예안리 장시마을에서 ‘장시마을 사진전’ 등 여러 행사가 열렸다. 장시마을은 가야사 복원사업에 따른 문화재 발굴 지역으로 마을이 사라지게 되자 지역 단체가 중심이 돼 고향을 떠나는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행사를 기획하게 됐단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단합이 잘돼 저녁마다 모여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절기마다 잔치를 벌이며 진한 정을 나눴는데,이젠 뿔뿔이 흩어져서 어떻게 살아가실지 걱정이 된다는 행사 기획자의 말에 참 마음이 아팠다.

    이곳 어르신들이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 몇 년만 있으면 죽을 낀데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안 될까?”라는 한 어르신의 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김해에는 이곳 말고도 봉황동(회현동) 일부 지역도 가야사 복원 사업에 따른 문화재 발굴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이 고향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다. 문화재 발굴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리게 된 이들 마을 사람들에게 문화재가 어떻게 느껴질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을에서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슬레이트 집의 마루 벽에는 가족 사진들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고, 마당엔 장독들이 놓인 수돗가와 오래된 감나무가 있고, 집 오른쪽과 뒤쪽은 대나무 숲과 함께 산으로 이어지고. 집 입구 사랑방 앞에서 보면 아래에 있는 동네 집들과 하천변의 정자나무가 보이고…. 어릴 적에 자주 갔었던 외갓집 모습이다.

    사실 내 어머니도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다. 어머니의 고향은 예전 김해 장유면 삼문리 능동마을이다. 장유신도시 개발이 되면서 어머니의 고향은 사라졌다. 지금은 행정구역도 바뀌었고, 마을 앞 하천도, 정자나무도, 집 뒤 야산도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예전 마을이 있던 곳은 아파트와 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 어머니의 고향, 내 외갓집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몇 년 전 내 차를 타고 창원으로 오면서 고향 마을 쪽을 바라보시며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그리워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1970년대 창원공단 개발로 실향민이 된 지인이 있다. 이분도 고향을 잃었지만 내 어머니보다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주 과정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창원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데다, 고향 마을 자리에 만들어진 대기업의 공장 내에 마을 정자나무가 그대로 있다. 거기다 아직도 1년에 한 번씩 정월 대보름날엔 고향 사람들이 정자나무 주변에 모여 당산제를 지낸단다.

    밀양이 고향인 지인은 몇 년 전 고향 마을이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거론되자 고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향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남길 계획을 했다. 지인은 그후 마을이 신공항 후보지에서 제외되자 촬영 계획을 접었다. 그러나 지인이 전에 생각했던 대로 고향의 모습들과 사람들을 기록했으면 한다. 지금의 고향 모습도, 사람들도 세월 따라 변하고 사라질 것이기에.

    고향은 멀리 있거나 세상에서 사라져도 그곳에서 살았던 이들의 마음속에 추억과 그리움으로 존재한다. 정자나무 하나가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고향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처럼. 이제 정든 고향을 마음속에만 간직해야 하는 실향민들에게 우린 어떤 위로를 해야 하나.

    허철호(사회2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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