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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인] 이양재 경남사격연맹 실무부회장

“창원국제사격장 활용해 사격 대중화 기여하고파”

  • 기사입력 : 2019-11-06 2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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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창원에서는 전 세계 91개국에서 선수와 임원 등 4300여명이 참석해 세계사격 대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2018 창원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려 호평을 받았다.

    창원에서는 지난 2003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무려 7번이나 국제사격연맹(ISSF)창원월드컵이 열리는 등 국제사격대회가 줄줄이 개최됐다.

    올해만 해도 실업연맹회장배, 한화회장배, 대통령경호처장기 전국사격대회 등 국내 굵직한 대회들이 열렸고, 제1회 창원시장배 전국사격대회도 창설돼 지난 9월 창원국제사격장에서 개최됐다.

    지난 2일에는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아사격연맹 총회에서 창원이 2023년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 1971년 한국 태릉사격장에서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린 이후 한국에서는 무려 52년만의 쾌거다.

    이양재 경남사격연맹실무부회장./전강용 기자/
    이양재 경남사격연맹실무부회장./전강용 기자/

    창원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사격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이 처럼 창원이 세계 사격계에서 각광받기까지 36년간 묵묵하게 궂은일을 도맡아온 숨은 조력자이자 경남 사격의 산증인인 이양재 경남사격연맹 실무부회장겸 대한사격연맹 부회장이 있었다.

    -사격과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사냥을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가게 되면서 총을 잡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냥을 하면 사는 것을 꿈꾸었다. 1983년도께 사업으로 여유가 생겨 당시 400만원하는 총을 샀는데 이를 본 경남 사격의 1세대인 조경래 전 경남사격연맹 부회장이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며 경남사격연맹에 들어올 것을 권해 연맹과 인연을 맺었다. 95년부터는 경남사격연맹 전무이사를 맡았는데 전국체전에서 덜컥 종합우승을 해 사격하고는 인연이 있는가보다 싶었다.

    -사격과 관련해 그동안 해 온 일이 많은데 어떤 일을 했나

    ▲경남사격협회 전무이사를 맡아 각종 대회에 참가했는데 매번 사격대회가 서울에서만 열리고 지방에서는 개최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한사격연맹에 어떻게 하면 창원에서도 사격대회를 할 수 있냐고 물으니 임원들의 숙박비와 교통비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1998년에 실업단대회를 유치했다. 1998년에는 전국 최초로 전자표적을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종이표적을 사용하며 한발 쏘고 당겨서 확인하고 하던 시대였다. 안하던 것을 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 처음에는 주변의 반대도 많았지만 설득해 설치했다. 이후 사격에 대한 신뢰도 생기고 실시간으로 점수를 확인할 수 있어 방송중계도 가능해졌고 국내 사격장들도 전자표적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창원이 10년 정도는 앞서간 것이다.

    -팀 창단과 다른 대회 유치도 많이 했죠?

    ▲1998년에 IMF가 터져 다른 실업팀들이 해체할 때 창원시청은 오히려 팀을 창단했다. 당시 조흥은행 사격팀을 그대로 인수했다. 경남장애인사격연맹도 창단했다. 지금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문애경 선수 등도 그렇게 발탁됐다. 창원과 김해 학교 사격부는 물론 김해시청 사격실업팀 창단에도 간여했다. 2000년도부터 경남사격협회 실무부회장을 했다. 2002년에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는데 사격을 서울 태릉에서 열기로 했는데 너무 멀어 창원에서 하자고 설득해 부산시로부터 40억원을 지원받아 창원사격장을 리모델링해 유치했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나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2003년부터 창원월드컵대회를 유치했다. 이후 창원에서만 7번이나 월드컵대회가 열렸다. 국제대회를 잇따라 유치하면서 국제사격연맹 관계자들과 세계 사격인사들과 자연스럽게 인적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양재 경남사격연맹실무부회장./전강용 기자/
    이양재 경남사격연맹실무부회장./전강용 기자/

    -2018년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유치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유치 과정과 일화는

    ▲2011년 창원월드컵사격대회때 라냐 국제사격연맹회장이 창원국제사격장은 도심 속에 위치해 여건이 좋다며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유치를 권고 했다. 이때부터 유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실무를 맡아 슬로베니아와 경쟁을 했고, 유치가 확정되면서 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대외협력관으로 대회 개최에 힘을 쏟았다. 창원시나 조직위원회도 처음 여는 대회였기 때문에 대회유치부터 폐막 때까지 풀리지 않는 일이 있으면 뛰어가 조율하며 원활하게 대회가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스폰서나 후원광고도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해 직접 발로 뛰며 해결했다. 뒷얘기지만 유치가 어려워지면 마지막 전략으로 대회가 열리는 15일간 10억원가량이 소요되는 선수단의 점심을 모두 제공하겠다는 카드를 제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에 슬로베니아가 기권하면서 만장일치로 창원 유치가 결정됐다. 여기에는 국제경기 때마다 찾아다니며 홍보를 한 것과 그동안 맺어온 세계사격관련 인사와의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라냐회장과 의형제처럼 지내는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 큰 줄기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유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창원이 사격의 메카로 불리고 있다.

    ▲창원은 따지고 보면 국내 사격의 뿌리다. 박종규 대한사격연맹 총재가 국내 사격을 활성하면서 태릉 푸른동산과 경남대 사격, 해병대, 해군 등에서 경남출신 지도자들을 많이 양성했다. 그게 큰 힘이다. 박재규 총장도 1978년 우리나라에서 유치한 최초의 대회인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 조직위 국제부 자문위원을 하면서 라냐회장과 인연을 맺어 세계사격인들과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창원에 굵직한 대회들을 유치하도록 도와줬다. 그런 덕을 지금 창원이 보고 있는 것이다. 창원사격장은 1982년 처음 마산에서 전국체육대회를 할 때 라이플 사대만 있던 소박한 시설이었는데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부회장에게 사격이란 어떤 것인가

    ▲모든 스포츠는 정신과 육체적 건강, 생활의 활력을 준다. 나에게도 그렇다. 시간이 나면 사냥을 나간다. 총은 사격, 사냥용, 권총, 소총 등 17정을 보유하고 있다. 마니아다. 사격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표적을 노려보며 집중력을 가질 수 있다. 요즘 스마트폰에 빠져 산만한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스포츠다.

    -앞으로 계획은

    ▲사실 쉬고 싶지만 기회가 된다면 창원국제사격장을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으로 만들어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다. 사격장 부지를 청소년 캠프와 물놀이 시설, 아이스링크 장으로도 활용하고, 입대할 젊은이들을 위해 미리 사격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거나 해병대나 해군 등 부대끼리 레이저사격대회도 열고, 200만명인 서바이벌 동호인들이 창원사격장에서 대회를 하도록 하는 것도 좋다. 일본은 자위대가 아니면 총을 못 만지는데 이런 일본인들에게 사격과 관광을 매치해 유치해도 좋고, 사격 후 정병산 둘레길을 가던지, 진해에서 집트랙을 타도록 하는 연계 관광 상품을 개발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창원국제사격장같은 시설을 놀리지 말고 활용하면 좋겠다.

    ☞ 이양재 부회장은?

    1956년 창원에서 태어났다. 진해고와 고려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고, 1995년 경남사격연맹 전무이사, 2000년 경남사격연맹 실무부회장, 2010년 창원시 재향군인회 회장 등을 거쳐 현재 대한사격연맹부회장, 경남근대5종부회장을 맡고 있다. 수상경력으로 2016년 제55회 경남도 문화상 체육부문 수상, 201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성공개최 공로로 국제사격연맹 감사패,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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