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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만델라의 유산’- 이현근(문화체육부 부장)

  • 기사입력 : 2019-11-05 20: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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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77억 명의 인구가 북적거리면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지구촌의 소식 가운데 백인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우승컵을 들고 환호하는 흑인 럭비선수의 모습이 눈길을 잡았다. ‘2019 럭비월드컵’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 팀 주장 시야 콜리시가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여느 스포츠 종목 우승팀의 환호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남아공 국민들에게는 특별한 감회를 주기에 충분했다. 대표 팀 역사상 흑인이 첫 주장을 맡고 우승까지 차지한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즉각 첫 흑인주장 콜리시를 두고 ‘만델라의 유산’이라고 보도했다.

    남아공의 흑인들은 소수 백인들이 지배하면서 흑백분리정책에 따라 인종차별을 받아왔고, 이를 반대하던 수많은 흑인들이 감옥에 수감되거나 숨졌다. 결국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남아공 역사상 처음 흑인으로 당선되면서 인종차별갈등이 종식되는가했지만 이번엔 흑인들이 백인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면서 혼란은 쉽게 종식되지 않았다.

    이러던 중 만델라 대통령은 백인으로만 구성된 남아공의 한 럭비 팀과 영국 팀의 경기가 열렸는데 자국 흑인들이 오히려 영국 팀을 응원하는 것으로 보고 고민 끝에 스포츠로 흑백간 화합을 추진한다. 만델라 대통령은 백인 주장을 불러 남아공에서 열리는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결국 기적 같은 우승을 이끌어내며 럭비를 통해 흑인과 백인이 화합하는 단초를 만들어냈다. 이는 맷 데이먼이 출연한 영화 ‘인빅터스’로 제작돼 감명 깊게 보기도 했다.

    남아공의 흑백갈등은 우리나라의 좌우이념 갈등만큼이나 뿌리가 깊다. 남아공은 다른 아프리카대륙의 국가처럼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확대와 노예무역정책의 희생양이 되면서 17세기부터 백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남아공은 1815년부터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961년 5월 독립했지만 경제권을 가진 소수 백인들의 흑인분리정책은 극심했고, 넬슨 만델라 등을 중심으로 한 흑백 분리정책 반대 운동가들을 탄압했다. 남아공 흑인들은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백인에 대한 피의 보복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통합과 국가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지나간 과거를 내버려 두라”며 백인에 대한 화해와 용서를 통한 화합을 촉구했다. 결국 그의 말대로 남아공은 흑인과 백인이 화합하며 공존하는 나라로 거듭났으며, 콜리시같은 첫 흑인주장까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만델라의 유산’이라고 불릴 만하다.

    거창하게 남아공의 얘기를 길게 꺼낸 것은 그들이 부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국민들의 화합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특히 2019년 한국사회는 ‘조국사태’를 계기로 두 동강이 났다는 표현처럼 국민의 정서가 갈라져 해방 전후 형제간, 동족간 피를 흘렸던 좌우익의 싸움을 연상하게 할 만큼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와 취업난 속에 아버지와 아들이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고,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계층 간 불공정 고착 등 수많은 양극화 현상마저 혼재해 있다.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이지만 서글프게도 우리에게는 어디에도 매듭을 풀어줄 ‘만델라의 유산’이 보이지 않는다.

    이현근(문화체육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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