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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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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지식 소매상들에게 속지 않는 법-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19-10-22 20: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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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은 독서의 계절? 과연 그럴까? 이 말은 가을에 책 판매가 뚝 떨어지는 걸 극복하기 위해 일본의 한 출판사가 만든 마케팅 구호였다. 사실 가을은 가장 책을 안 읽는 계절이다. 굳이 가을을 말한다면 사색의 계절이고 여행의 계절이다. 가을은 자연으로 나가 계절을 만끽하기에도 모자란 시기다.

    책에 몰두하기는 오히려 겨울이 제격이다. 중국 후한 시대 학자 동우(董遇 180~240년경)가 책 읽을 시간 내기 어렵다는 이에게 말했다. “겨울은 한 해의 남은 시간, 밤은 하루의 남은 시간, 비 내리면 한때의 남은 시간이니 이때야말로 책 읽기 적당하다.” 책 읽기 좋은 세 가지 남은 시간, 독서삼여(讀書三餘)의 고사다.

    한국에서만 해마다 4만5000여 권(매일 120권) 상당의 신간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한 해에 몇 권의 책을 읽었는가? 이 내용만 접하면 우리는 마치 책을 안 읽은 죄인이 돼버려 숙연해지고 만다. 그러나 너무 자책하지 말자. 지식을 도구 삼아 악취만 풍길 바에야 차라리 안 읽는만 못하다. 제가(齊家) 이상을 넘어설 줄 모르는 수신(修身)은 사이비다. 그 많은 책을 읽고 유명세에 편승해 온갖 잘난 체는 다 하면서 세상사를 전부 꿰뚫고 있는 것처럼 나대고 있는 소위 ‘명사들’이 사회를 위해 일조한 것이 있는가. 쓰레기 같은 책이나 만들어 팔아먹고 보따리장수처럼 전국을 누비며 온갖 강연으로 돈에만 목숨 거는 소위 ‘지식 소매상’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시간에 그 좋은 유명세를 무기 삼아 위정자들을 교화시키는 데 혼신을 다 바쳐야 옳은 게 아닐까. 책 속에는 길만 있는 게 아니라 악 세포 또한 그에 못지않게 많다. 쓰레기보다 더한 책들 또한 부지기수다.

    그러니 삶의 철학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가 당하지 않기 위해서 기본지식은 가져야 한다. 소위 지식인들이 제멋대로 활개 치도록 만든 건 우리들이다. 그저 유명하다는 소문에 휩쓸려 벌떼처럼 달려간다. 지혜가 아니라, 단지 ‘들었다는 스펙’을 쌓기 위해! 심리학에 할로효과(halo effect)가 있다. 어떤 사람의 한 면이 좋으면 다른 것도 다 좋게 보이는 현상, 즉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소 말뚝도 좋아 보인다’는 속담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서민의 인생에 대해 고뇌할까.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계층이론에서 ‘지배받는 지배자’라는 용어로 ‘지식인’을 설명했다. 지식인은 지배층에 속하지만 이런 이유로 지배층이면서도 지배를 받는 모순적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공인회계사·변호사·교수·박사 등 각 분야의 전문 지식인들은 해당 분야에서는 지배자의 위치에 있으나, 돈·권력 앞에서는 자본·힘의 지배를 받는 노예가 되어 주인님(?)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편법수단까지 동원하며 혼신의 노력을 쏟는 오늘의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어 씁쓸하다.

    마오쩌둥은 지식은 존중했지만 지식인은 무시했다. 그 이유는, 지식인들이 “①거지 근성이 강하고, ②고마워할 줄 모르고, ③남 핑계대기 좋아하고, ④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온갖 잘난 척은 다하고, ⑤무책임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식인에는 정치인도 당연히 포함된다.

    한나라 유방은 만나는 사람마다 목청을 높여 선비들에 대한 욕을 늘어놓는 것은 물론, 자신을 찾아온 선비의 관(冠)을 빼앗아 그 안에 오줌을 누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굳이 책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 없다. 대신 주인으로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만 무조건 읽는다고 해서 참된 지식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 지혜와 혜안으로 승화될 때 온전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홀로코스트 트라우마로 인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대 시인 프리모 레비(1919~1987)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얘기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모든 길은 책 바깥에 있으니까!”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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