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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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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88) 제24화 마법의 돌 188

“부산은 안전하지 않은가?”

  • 기사입력 : 2019-10-16 07: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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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번 돈으로 차를 사주었다. 답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영은 미월을 차에 태우고 바닷가 선착장으로 나갔다. 선착장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부산 사람들도 많은데 피란민까지 들끓고 있었다.

    부산은 평소보다 몇 배나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 때문에 실업자와 과부들, 고아들, 그리고 걸인들이 몸을 부딪치고 다닐 정도로 들끓고 있었다. 피란을 오기는 했으나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그들은 실업자나 걸인이 되어 떠돌아다녔다. 너나없이 굶주리고 있었다.

    부상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팔이나 다리가 잘린 사람도 있고 팔다리가 모두 잘린 사람도 있었다.

    1951년부터 미국의 원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 분유 가루와 같은 식료품과 의류가 쏟아져 들어왔다. 원조물자를 나누어주는 곳에는 시장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미국이 원조를 해주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을 것이다.

    미군에게 팔기 위해 상품도 들어왔다. 부산에 10만이 넘는 미군과 군수물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때도 부산은 항구도시로 번화했으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은 더욱 큰 도시가 되었다. 전쟁 중인데도 부산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재영은 미월과 회를 먹고 바닷가를 걸었다. 차는 한쪽에 세워두었다. 부산에 여러 번 왔으나 바닷가를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다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봄날의 저녁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갈매기가 끼룩끼룩 금빛 나래를 치면서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과 바다가 핏빛으로 붉다.

    이재영은 붉은 노을을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쟁으로 몇 달 동안에 수십만 명이 죽었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을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왜 전쟁터에 나가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어가고 있다.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고….”

    미월이 이재영의 손을 잡았다. 미월은 저고리와 치마 차림이었다. 머리는 파마머리다. 미군이 들어오면서 여자들의 머리 스타일도 달라졌다. 영화에 나오는 여자배우들처럼 파마머리를 하거나 짧게 자르는 것이 유행했다.

    “부산은 안전하지 않은가?”

    전쟁은 38선 근방에서 치러지고 있었다.

    “모르죠. 지난번에 부산만 겨우 남았잖아요?”

    미월의 말은 지난 6월 인민군이 남침한 것을 말한다. 이재영은 3개월 동안 동굴에서 숨어 지냈다. 공산 치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인민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미군이 왔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지.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항복시킨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야.”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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