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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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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85) 제24화 마법의 돌 185

“차가 없으니 어떻게 해?”

  • 기사입력 : 2019-10-11 07: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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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으로 한국은 지옥이 된 것 같았다.

    ‘세상이 잘못되었어.’

    이재영은 아들 이성식도 걱정이 되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이재영은 전쟁 중이었으나 쌀도 있고 돈도 갖고 있었다. 그는 굶주리는 여자들과 고아들을 위해 쌀을 조금씩 내놓았다.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미군도 구걸하는 사람들을 학교에 모아놓고 빵과 우유를 나누어주었다. 어떨 때는 밀가루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미군에게 받은 밀가루로 국수도 만들고 수제비도 끓여 먹었다.

    성식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는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지금은 동부전선에 있다고 했다.

    ‘성식이 살아 있었구나.’

    이재영은 가슴이 뭉클했다.

    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중공군이 춘계대공세를 감행하고 미군은 폭격으로 맞섰다. 대구에서도 미군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3월15일에 서울을 다시 탈환했다. 이재영은 서울이 수복되었으나 쉽사리 올라갈 수가 없었다. 중공군과 인민군은 38선 일대에서 치열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이재영은 대구에서 장사를 했다. 삼일상회를 운영하면서 미곡상도 크게 했다. 장사를 쉴 수가 없었다. 때때로 나는 왜 장사를 하는가. 나는 왜 돈을 버는가 하는 생각이 일어날 때도 있었다.

    ‘어차피 죽으면 그만인데….’

    자조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죽음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미월과 연심은 부산에서 요정을 개업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그녀들도 먹고살아야 했다. 이재영은 대구에서 부산을 오갔다.

    “대구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다녀요?”

    미월이 이재영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물었다. 이재영은 천천히 술을 마셨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미월의 요정은 방이 여러 개인 한옥집이었다. 전쟁 중인데도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차가 없으니 어떻게 해?”

    이재영은 미월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바람에 날리는 벚꽃을 보았다. 낮술을 마셔서인지 취기가 올라왔다.

    “차를 누가 훔쳐 갔어요?”

    “석 달 동안 동굴에 숨어 있었으니 어떻게 알겠어?”

    차를 누가 훔쳐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서울에는 언제 올라가요?”

    미월이 이재영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38선 일대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 잘못하면 또 피란을 와야 하는데 뭣하러 올라가?”

    “서울에 안 올라가요.”

    “당분간 못 올라가지.”

    이재영은 미월의 옷고름을 풀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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