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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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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정의의 여신상과 검찰 개혁- 허승도(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9-10-09 20: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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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 법무부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 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 부근에서는 진보진영에서 조 장관을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 검찰 개혁을 요구했고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촛불집회 참가자 중에는 각종 의혹의 중심에 있는 정경심 교수까지 사랑한다는 구호를 외쳤다고 하니 이들이 주장하는 검찰 개혁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검찰 개혁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인 ‘정의 여신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하고, 칼은 그 기준에 의거한 판정에 따라 제재를 가하는 것을 나타낸다. 선악을 판별하여 벌을 주는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도 기울이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저울의 잣대가 공평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원인은 그동안 검찰이 공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과 정치권력에 의해 검찰권을 공평하게 행사하지 않아 ‘정치검찰’이라는 오명까지 받은 게 사실이다. 정의의 여신이 두 눈을 가렸던 안대를 풀어 내 편과 네 편을 알아볼 수 있게 된 데서 비롯됐다. 과거 고위 공직자의 권력형 비리가 터질 때마다 검찰의 수사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특별검사에 의해 다시 수사한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눈에 안대를 씌우는 것이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안대다. 이와 함께 과도한 검찰권에 의한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종합하면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되 검찰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검찰 개혁이라는 말이다.

    최근 조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도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지시해 검찰이 외압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과 검찰의 인사권과 감찰권을 갖고 있는 조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을 나온 검사와 통화를 한 것이 그것이다. 검찰 개혁을 요구하고 있지만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진보진영에서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 방안은 언급도 하지 않고 조국 가족 관련 먼지떨이식 수사, 피의사실 공표 등을 지적하면서 검찰 개혁의 방점을 인권 보장과 검찰권 남용을 막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을 외치지만 ‘조국 수호’로 들리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인권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동안 검찰의 수사 관행에서 인권 침해가 드러났기 때문에 검찰 개혁의 당위성이 더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검찰 개혁은 시작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청 3곳을 빼고 특수부 폐지, 사건 관계인 공개소환 전면 폐지, 밤 9시 이후 심야조사 폐지 등 자체 개혁안을 내놨다. 공개소환 전면 폐지로 고위공직자 등 권력형 비리 혐의자에 대한 수사가 부실수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수사 관행을 과감하게 개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회 패스트 트랙에 올라 있는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도 검찰 권력을 분산하고 서로 견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수처가 대통령의 통제권에 있다는 것은 문제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지 않는 검찰 개혁은 곁다리에 불과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가능한 검찰제도 마련이 진정한 검찰 개혁이다.

    허승도(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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