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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글날을 맞으며- 심상백(전 창원남중학교장)

  • 기사입력 : 2019-10-06 20: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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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대왕이 우리의 글자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1443년에 창제하여 3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거쳐 1446년에 반포하였다. 발음 기관을 본떠서 자음을 만들고, 하늘(·)과 땅(-)과 사람( ) 세 가지를 기본으로 조합하여 모음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훈민정음은 정음, 언문, 반절 등으로, 19세기 말에는 ‘국문’으로 불리게 되었고, 1910년대부터 ‘한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주시경을 중심으로 한 국어 연구가들이 지어서 쓰게 된 것이다.

    한글은 ‘대한제국(1897~1910)의 글’에서 나왔다고 하며, ‘크고 바르고 하나뿐인 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 책에는 우리 자모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는데, 최세진이 1527년에 쓴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처음으로 훈민정음(한글) 자음과 모음의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이 이름은 최세진이 정한 것이 아니고 당시에 불리던 것을 최세진이 정리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기역(其役) 니은(尼隱) 디귿(池末) 리을(梨乙) 미음(眉音) 비읍(非邑) 시옷(時衣) 이응(異凝)으로 표기했고, 나머지 자음은 지(之) 치(齒) 키(箕) 티(治) 피(皮) 히(屎)로 적었다.

    모음의 이름은 아(阿) 야(也) 어(於) 여(余) 오(吾) 요(要) 우(牛) 유(由) 으(應) 이(伊)로 표기했다(원문에는 이응이 없음).

    자음 중에서 ‘기윽, 디읃, 시읏’의 경우에는 마땅히 표기할 한자의 음이 없었다. 그래서 ‘윽’ 대신에 음이 비슷한 ‘역’(役)을 취했고, ‘池末’(지말)은 당시의 음인 ‘디귿’(못 디, 귿 말)으로 읽게 하였다. 末(끝 말)과 衣(옷 의)에는 동그라미 표시를 해서 음으로 읽지 않고 ‘뜻’으로 읽게 하였다. 최세진도 그렇게 읽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오래전에 ‘기윽, 디읃, 시읏’과 ‘기역, 디귿, 시옷’의 명칭 사용에 대해 설문 조사를 했는데, 현행대로 ‘기역, 디귿, 시옷’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서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지구 상에 7000가지 정도의 언어가 있지만 문자는 30가지 정도이다.

    ‘한국어’라는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의 이름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이다. 10월 9일은 ‘한글날’인데, 올해 한글날은 한글 반포 573돌이 되는 날이다.

    언어는 생명력이 있어 새로 생겨나고 음이나 뜻이나 모양이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사회적 약속인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교통 법규를 지킬 때 우리 모두가 안전한 것처럼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문장 부호 규정, 로마자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 등을 가능하면 지키도록 노력해야 된다.

    하지만 표준어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옛말을 연구하여 우리의 말을 더 풍성하게 한다든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경우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다면 우리 삶의 구수한 맛을 위해 방언의 사용도 필요할 때가 많음을 생각하게 된다.

    심상백(전 창원남중학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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