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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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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인간과 동물과 자연은 하나다- 김태희(실학박물관장)

  • 기사입력 : 2019-09-24 20: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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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KBS 다큐 4부작 〈옐로스톤〉을 보았다. ‘옐로스톤’은 미국의 국립공원 제1호로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일컬어진다. 그 명성에 필자도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TV화면은 볼 만했다. 영상 기술이 좋아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계절을 넘어 장시간 작업했을 촬영기사의 고생이 느껴졌다. 그런데 다큐에 등장하는 옐로스톤의 동물들은 결코 한가롭지 않았다. 맹수, 맹금조차 자식을 낳고 또 먹고살기가 쉽지 않았다.

    다큐를 보면서 먹고사는 데는 인간과 동물이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조선시대에 인성과 물성이 다르냐, 같냐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인간의 본성과 물(사물 또는 동물)의 본성이 다른가 같은가 하는 논쟁은 성리학의 마음에 관한 철학적인 논쟁이었다. 그 논리는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이나 신분 차별 인정으로 연결되어 지극히 정치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논쟁은 결론을 보지 못했다.

    다산 정약용은 인간과 동물이 다름을 강조했다. 인간에게 윤리적 실천을 요구하는 맥락도 있었다. ‘기예론’에서는 왜 귀한 인간을 하늘이 연약하게 두었냐는 질문을 던지고는, 인간에게 기예를 습득하여 살아가도록 한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아무튼 다산은 인간을 좀 특별한 존재로 본 것이다.

    담헌 홍대용은 생각이 달랐다. 인간과 동물이 다름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의산문답〉에서 실옹의 이름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관점에서 물(物)을 보면 인간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면 물이 귀하고 인간이 천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물이 다 균등한 것이다.”

    홍대용은 실옹과 허자의 대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세계관을 종횡무진 풀어냈다. 지구는 평평하고 네모났다고 생각하는 허자에게 우주는 무한하고 지구는 둥글며 회전하고 있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지구란 우주 속의 살아 있는 물체다. 흙은 지구의 피부와 살이고, 물은 지구의 정기와 피이며, 비와 이슬은 지구의 눈물과 땀이고, 바람과 불은 지구의 혼백과 혈기다. 그래서 물과 흙은 안에서 빚고 햇볕은 밖에서 쪼이며, 원기를 모아 온갖 물체를 길러 낸다. 풀과 나무는 지구의 털과 머리카락 같은 것이고, 인간과 짐승은 지구에 붙어사는 벼룩이나 이 같은 존재다.”

    최근 세계적으로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는 23일 미국 뉴욕에서 예정된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를 겨냥했다. 청소년이 많이 참석한 이번 시위의 주동자로 16세 소녀인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버그(Greta Thunberg)가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거대한 빙하가 녹아 쓰러지는 영상을 많이 보게 되고, 아마존 열대 우림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기후변화에 관한 경각심이 많이 조성되었다. 일반 서민조차도 유난히 더워진 여름에 심상치 않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옐로스톤의 독특한 빛깔은 화산이어서 그렇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 간헐천이다. 이곳에서 김이 나는 온천수가 분수처럼 치솟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구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처럼 살아있는 지구를 누가 괴롭히는가. 인간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들이 지구에 부담을 주고, 그것이 다시 인간에게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양상이 예사롭지 않다.

    다큐 ‘옐로스톤’에서는 맹수의 귀환이 가져온 효과를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위험한 맹수를 몰아낸 결과 개체수의 변화가 생겨 옐로스톤의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인위적인 맹수 귀환책을 시행하여 생태계의 안정을 가져왔다고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편의를 위해 자연에 도전하여 극복했듯이 이제 자연과 함께 살아갈 대책을 찾아 행동해야 할 때다. 담헌이 말했듯 지구는 활물(活物)이다. 그곳에 온갖 생물들이 붙어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지구의 일생보다 짧다. 잠시 붙어살다가 떠나지만, 뒤이을 후손도 붙어살아야 할 게 아닌가.

    김태희(실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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